메뉴 건너뛰기

close

24일 오후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 서울피플퍼스트 주최로 열린 '장애인 탈시설 지원조례 폐지를 막기 위한 24시간 공동행동'에서 발달장애인들이 '내 인생을 시설에 가두지 마라', '나는 장애인 시설 밖에서 살고 싶어요' 등이 적힌 알록달록한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24일 오후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 서울피플퍼스트 주최로 열린 '장애인 탈시설 지원조례 폐지를 막기 위한 24시간 공동행동'에서 발달장애인들이 '내 인생을 시설에 가두지 마라', '나는 장애인 시설 밖에서 살고 싶어요' 등이 적힌 알록달록한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 복건우

관련사진보기

 
"시설 생활은 제 청춘을 빼앗아 갔어요. 탈시설한 지 6년짼데 이젠 축구 모임도 나가고 돈도 직접 관리하면서 눈치 안 보고 살고 있어요." - 서울 광진에 사는 발달장애인 신유다씨

"제 의사와 상관없이 시설에 보내져서 40년 넘게 살았어요. 시설에서 나오니 손톱도 꾸미고 예쁜 옷도 입으면서 제 취향이 생겼어요." - 서울 영등포에 사는 발달장애인 이아무개씨 A

"시설에서는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못 잤어요. 이젠 원하는 대로 살아요. 탈시설은 제게 '자유'라는 단어를 선물해 줬어요." - 영등포에 사는 발달장애인 이아무개씨 B

발달장애인들이 서울시의회의 탈시설 장애인 지원 조례 폐지 움직임에 반대하며 24시간 공동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중증장애인일수록 시설이 안전하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며 "시설이 아무리 좋아진다고 해도 시설은 시설일 뿐이다. 우리도 시설 밖에서 남들처럼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 자조단체인 서울피플퍼스트는 24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에서 '장애인 탈시설 지원조례 폐지를 막기 위한 24시간 공동행동'에 나섰다. 실제 시설 거주 장애인 3만 명 가운데 80%가 발달장애인으로 추산된다. 

한편 서울시의회가 지난 3일 입법예고한 '서울특별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탈시설 조례)'를 폐지하는 조례안은 오는 25일 임시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해당 조례안은 현재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에 회부돼 상정 및 심사를 앞두고 있다.

공동행동 참가자들은 "서울시의회는 탈시설 조례를 폐지하지 말라", "김현기 의장은 발달장애인들과 만나서 대화하라", "우리의 말을 들어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어 "(탈시설은) 모두 함께 살아가자는 것, 차별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보자는 것,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편가르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사는 것"이라며 "탈시설 조례가 폐지되면 발달장애인의 온전한 사회참여가 힘들어진다"라고 입을 모았다. 

"시설은 스스로 살아갈 힘 뺏는다"
 
24일 오후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 서울피플퍼스트 주최로 열린 '장애인 탈시설 지원조례 폐지를 막기 위한 24시간 공동행동'에서 서울 광진에 사는 탈시설 발달장애인 신유다씨가 발언하고 있다.
 24일 오후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 서울피플퍼스트 주최로 열린 '장애인 탈시설 지원조례 폐지를 막기 위한 24시간 공동행동'에서 서울 광진에 사는 탈시설 발달장애인 신유다씨가 발언하고 있다.
ⓒ 복건우

관련사진보기

 
이날 오후 3시 공동행동이 시작되자, 발달장애인들은 동료와 활동가 등 50여 명 앞에서 저마다 준비해 온 발언문을 읽었다.

은평구에 사는 발달장애인 오석민(38)씨는 5년 전 거주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 주택에서 살다가 지금은 지원주택 입주를 준비하고 있다. 오씨는 서울시 탈시설 조례가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근거"라면서 "이 조례가 폐지되면 우리가 보장받아야 하는 탈시설이란 권리를 침해당할 것이다. 거주시설 때문에 지역사회라는 문턱이 높아져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영등포에 사는 발달장애인 이아무개씨는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40년을 살다 나왔다. 이씨는 "탈시설하고 나서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지역사회를 배우고 있다"라며 "머리와 손톱을 꾸미고 예쁜 옷을 입으면서 시설에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취향과 취미를 가지게 됐다. 여전히 한글도 어렵고 대중교통 이용도 어렵지만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광진구에 사는 발달장애인 신유다(36)씨는 10대와 20대 시절 대부분을 시설에서 보냈다. 2012년 '도란도란'이라는 장애인 거주시설에 입소해 7년간 생활한 경험이 있다. 신씨는 "지역사회에서 남들과 다르지 않게 친구들을 만나고 술도 마시며 살고 싶었는데 발달장애인이란 이유로 시설에 보내져 제 청춘을 빼앗겼다"라며 "시설에서 나온 지 6년 차인데 이젠 축구 모임도 나가고 종교 활동도 하면서 여유롭게 살고 있다. 탈시설 지원을 마련하고 거주시설을 폐쇄하는 것은 대한민국 모든 장애인이 행복해지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지금도 시설 '체험홈(자립생활 전 중간 단계)'에서 살고 있다는 발달장애인 박초현(26)씨는 "일곱 살부터 시설에서 살았지만 시설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시설에서는 늘 긴장하며 지내야 하고 무언가를 얻으려면 사회복지사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스스로 살아갈 힘을 빼앗는 시설에서 나와 허락받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고 싶다. 발달장애인들이 탈시설할 수 있도록 지원을 늘리고 감시가 아닌 응원을 보내달라"라고 말했다.

25일 임시회 예정... 탈시설 정책 제동 걸리나
 
24일 오후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 서울피플퍼스트 주최로 열린 '장애인 탈시설 지원조례 폐지를 막기 위한 24시간 공동행동'에서 서울 성동에 사는 탈시설 발달장애인 임종은(왼쪽)씨가 발언하고 있다.
 24일 오후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 서울피플퍼스트 주최로 열린 '장애인 탈시설 지원조례 폐지를 막기 위한 24시간 공동행동'에서 서울 성동에 사는 탈시설 발달장애인 임종은(왼쪽)씨가 발언하고 있다.
ⓒ 복건우

관련사진보기

 
탈시설은 장애인이 집단 거주시설에서 나와 자신의 의지에 따라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2008년 비준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CRPD) 제19조와 이 협약에 관한 일반논평 5호 및 탈시설 가이드라인에서 규정하는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다.

서울시 탈시설 조례는 2022년 6월 서울시의회 본회의를 통과해 2022년 7월 제정 및 시행됐다. 부산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였다. 조례에는 시장의 책무와 기본계획, 정책 자문을 위한 민관협의체 구성, 예산 지원 등을 명시돼 있다. 조례는 당시 진행 중이던 탈시설 관련 사업의 근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5월 폐지 조례안이 주민조례로 청구됐다. 청구인은 "탈시설 조례가 중증장애인의 거주환경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라며 3만 3000명의 청구인 명부를 서울시의회에 제출했다. 서울시의회는 그중 유효한 2만 7000명의 서명을 확인해 지난 3월 폐지 조례안을 수리했다. 청구권자 수가 2만 5000명 이상이면 서울시의회에 주민조례청구가 가능하다.

서울시의회는 지난 3일 이 폐지 조례안에 대한 입법예고를 진행했다. 이후 5일 동안 입법예고에 대한 의견을 댓글 형식으로 남길 수 있었는데, 총 5618건의 댓글이 달렸고 대부분 탈시설 조례 폐지에 찬성하는 의견이었다.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 등 단체는 최근 탈시설 조례 폐지를 촉구하는 집회에 나서며 '탈시설 정책이 중증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등 장애인단체는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등 맞서고 있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도 서울시의회에 2989명의 반대의견서를 제출했다.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의원 9명 중 6명이 탈시설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소속인 데다가 오세훈 서울시장도 취임 이후 줄곧 탈시설 정책에 제동을 걸고 있어 폐지 조례안이 통과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다만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 소속 이소라 부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탈시설 조례는) 정치적인 이슈가 아니고 단체들 간 찬반이 극렬한 사안이다 보니 금방 안건을 상정해서 통과시킬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서울피플퍼스트 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3시부터 내일 오후 2시까지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에서 1박 2일간 진행된다. 발달장애인 부모·형제자매·친구들과 나누는 자립 이야기, 탈시설 조례 폐지 반대 피켓 선전전, 서울시의회 의원들에게 전하는 편지 낭독 등이 예정돼 있다.
 
24일 오후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 서울피플퍼스트 주최로 열린 '장애인 탈시설 지원조례 폐지를 막기 위한 24시간 공동행동'에서 탈시설 발달장애인들이 무대로 나와 춤추며 노래하고 있다.
 24일 오후 서울시의회 의원회관 앞 서울피플퍼스트 주최로 열린 '장애인 탈시설 지원조례 폐지를 막기 위한 24시간 공동행동'에서 탈시설 발달장애인들이 무대로 나와 춤추며 노래하고 있다.
ⓒ 복건우

관련사진보기


태그:#탈시설조례, #서울시의회, #서울피플퍼스트, #발달장애인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꼼꼼하게 보고 듣고 쓰겠습니다. 오마이뉴스 복건우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