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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작은 집 거실에 '사자' 한 마리가 돌아다닌다. 식탁에서 밥 먹은 그릇을 옮기다 햄반찬이 바닥에 떨어졌는데 사자가 스윽 다가와 낼름 먹고 가버린다.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방문을 발톱으로 박박 긁어서 열어주면 사자 한 마리가 스윽 들어와 바닥에 철푸덕 턱을 괴고 눕는다. 김관장(남편)과 저녁에 TV를 보는데 사자가 TV 앞을 스윽 지나가 베란다 밖을 내다본다. 야생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텔레파시를 나에게 보내는 느낌이다.   

실은 진짜 사자가 아니고 몸무게 18KG 나가는 우리집 개 무원이 얘기다. 요즘은 무원이가 동물원의 사자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나와 김관장은 개나 고양이를, 또 금붕어나 도마뱀을, 그러니까 고슴도치나 햄스터마저도, 사람마다 좋아서 키우는 그런 각종 애완동물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렇게 큰 개를 마당도 없는 아파트며 오피스텔에서 키운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집에는 무원이 말고도 무원이가 적적할까 봐 친구하라고 유기견보호소에서 데려온 다섯 살짜리 보스턴 테리어, 테리도 산다. 두어 달 전까지만 해도 둘째딸이 키우고 싶다고 우기고우겨 데려왔던 두 살 넘은 고슴도치, 두치도 거실 한켠을 차지하고 살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무원이, 테리, 두치의 똥오줌을 치우고 밥과 물을 주다가, 이런 나는 동물원 사육사인가 현타가 오는 것이다. 집이 한번 동물원인가 싶어지니까 무원이가 더 사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집에 도둑이 들었다

13년 전, 결혼하고 연년생으로 딸 둘을 낳고 CCTV도 없는 20년 된 낡고 작은 아파트에 살 때였다. 맞벌이라 아이들 어린이집에 맡기고 둘 다 일을 나가 아무도 없는 낮에 집에 도둑이 들었다. 복도 쪽 창문의 알루미늄 창살을 절단기로 자르고 들어왔는지 창살은 절단나 있고 창문가에 붙여둔 침대에는 군화 자국이 선명했다.
 
무원이와 테리와 두치의 거실 회동
▲ 무원이와 테리와 두치의 거실 회동  무원이와 테리와 두치의 거실 회동
ⓒ 신선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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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땐 예물 몇 개와 저금통에 든 돈 몇 푼이 없어진 게 다였지만 네 살, 다섯 살이었던 딸들과 도둑이 든 집에 사는 일은 뭔가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김관장이 그때쯤 진돗개(라고 쓰고 잡종이라 읽기) 한 마리를 탁구클럽에 데려왔고, 한겨울이라 집에서 겨울만 나게 해줄 생각으로 집에 들였는데 막상 집에 개가 있으니 누가 집앞에 얼쩡거려도 겁날 게 없어졌다.

아이들이 개를 좋아하는 건 '국룰'이니 말할 것도 없지만, 나는 무원이가 우리집을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러 온 장수처럼 느껴졌다. 그 후로 무원이는 우리집에서 쭉 함께 살게 되었다.  

개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으니 지식도 별로 없었기에, 무원이가 자꾸만 무럭무럭 자라 아이들이 타고 다닐 정도가 됐을 때는 무원이가 어디까지 자라는 종인지 알 수도 없었고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아 다시 원주인에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 않았다.

처음엔 이갈이를 하는 줄도 모르고 집에만 오면 하루는 새로 산 구두가 걸레가 되어 있고, 하루는 휴지들이 다 풀어헤져져 구름 위에 무원이가 앉아 있고, 하루는 이케아에서 산 빨간 3인용 소파 다리가 다 파인 채로 아작이 나 있있었다. 그냥 매일매일이 나에겐 청소와의 전쟁이라서 무원이가 밉기도 했는데 아이들에겐 매일이 무원이 덕에 놀이동산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개가 집에 있으니, 든든하고 안전했다. 

이제는 첫째가 고등학생이 되었고, 5년 전에 신축 오피스텔로 이사를 왔기에 더이상 무원이가 집을, 아이들을 지켜준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무원이 똥오줌을 치워주고 산책을 시켜주며 되려 지켜주는 느낌이 강해졌다. 하지만 나는 자신의 가장 찬란했던 젊은 시절을 나라를 지키는 데 갈아넣고 퇴임한 장수를 대하듯, 우리집을 또 우리 아이들을 지키느라 온 시절을 풀 한 포기 없는 좁고 답답한 마룻바닥에서 살아낸 무원이를 극진히 보살펴야 할 책무가 나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그래서 2년 전에는 무원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큰맘 먹고 테리도 입양한 것이다. 둘이 데면데면한 모습을 보며 또 현타가 온 건 말해 무엇하랴마는. 

그렇게 개를 썩 좋아하지 않는 김 관장과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원이와 테리를 끌어안고 살아간다. 좁은 집에 큰 개들이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김관장과 나는 가끔 헛웃음이 나오곤 한다.

무원이와 테리는 나만 쫓아다니는 '엄마바라기'들이다. 저녁에 소파에 앉아 TV를 볼 때면 어김없이 내 품에는 테리가 내 발밑에는 무원이가 바짝 붙어 앉아 있다. 그 모습을 보며 옆에 앉아 있던 김관장이 또 헛웃음을 허허 웃다가 나에게 물었다.

"우리집이 어쩌다 이렇게 개판이 됐을까. 난 솔직히 개 별로 안 좋아하는데. 당신은 무원이랑 테리 키우는 게 좋아?"

"의리지. 난 무원이 끝까지 책임질 거야. 고맙잖아. 무원이 없었음 그 시절을 난 어린 딸들이랑 어떻게 보냈을까 상상이 안 돼." 

"그래 의리, 허허, 개랑 의리라, 허허, 그거 신선하네."

 

태그:#반려견, #김관장, #보스턴테리어, #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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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호기심 많은, 책 만드는 편집자입니다. 소심한 편집자로 평생 사는가 싶었는데, 탁구를 사랑해 탁구 선수와 결혼했다가 탁구로 세상을 새로 배우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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