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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사 소장 사진
▲ 이순신 표준 영정 현충사 소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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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불패의 신화를 만든 승리요인을 살펴보면, 우선 지피지기(知彼知己)의 혜안과 철두철미한 대비력, 솔선수범하는 지휘력, 조선의 우수한 무기력 등을 손꼽을 수 있다. 그런데 그의 혜안과 대비력에는 탁월한 전략과 함께 특별한 사실이 숨겨져 있다. 바로 전쟁이나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역점(易占)을 쳐서 앞일을 정확히 예측했던 것이다.

그 역점은 대체 어떻게 치고 어디서 온 점법였을까. 필자가 그 유래와 연원을 추적한 결과, 중국 송나라 때 상수역학(象數易學)의 최고 학자인 강절(康節) 소옹(邵雍 1011∼1077)의 주역 이론에서 영향 받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상수역학이란, 팔괘가 의미하는 물상의 괘상과 숫자를 중시하는 학문으로, 한대(漢代)의 주역학자 맹희(孟喜)에서 시작되어 초연수(焦延壽)와 경방(京房)이 계승하였고, 송대(宋代)에는 진박(陳摶)과 소옹(邵雍)이 발전시킨 것이다.

임진왜란이전 조선에서는 전쟁을 예측하는 주역점이 성행했는데, 이 때 전통적인 주역점을 간편화한 점법이 등장했다. 본래 주역점은 점을 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번거롭기 때문에 나온 것이 중국에서 유래한 척전법(擲錢法, 동전점)과 조선의 민간에서 유행한 척자점(擲字占)이다. 척전법은 전한(前漢) 시대 역학자 초연수(焦延壽)가 지은 《초씨역림焦氏易林》에서 유래하고, 척자점은 이순신이 역점과 함께 사용한 점법이다. 척자점은 주역점을 계승한 실용역으로서 윷을 던져 점치는 사점(柶占)의 일종으로 추정된다. 다만 척자점은 윷점을 인용한 점법일 뿐 윷놀이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1594년 갑오년에 전쟁이 부진하고 전국 각지에 전염병과 기근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절도 사건이 빈발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순신은 가족의 질병 소식과 유성룡의 잘못된 사망소식을 들은 데다 농사일도 걱정이 되어 이해 7월부터 척자점을 치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길한 점괘가 나왔고 추후 모두 무탈함을 확인하였다. 이뿐만이 아니라 전쟁에 관한 점도 쳐서 전쟁을 잘 대비할 수 있었다.

특히 이순신은 백의종군기간 중 순천에 있을 때 5월 5일 한산도에서 온 원유남을 통해 원균의 부하들이 이탈하여 위태롭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욱이 자신을 모함까지 한 그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매우 걱정된 나머지 5월 12일에 신홍수(申弘壽)를 시켜 원균에 대한 주역점을 치게 하고 점괘를 풀었다.
 
"신홍수가 만나러 온 김에 원균에 대한 점을 치게 했더니, 첫 괘가 수뢰둔水雷屯괘 가 나왔고 이것이 변하니 천풍구天風姤괘 가 나왔다. 용괘用卦가 체괘體卦를 극克하여 크게 흉하다.
- 난중일기 정유년 5월 12일 -
 
위의 점괘 풀이를 보면, 본괘인 수뢰둔괘와 변괘인 천풍구괘에 체괘와 용괘, 오행의 생극관계를 적용하였다. 이는 소옹의 체용론에서 볼 수 있는 난해한 이론으로 본괘와 지괘(之卦) 관계로 현재와 과정을 예측하고, 변괘로 결과를 예측하는 방법이다.

수뢰둔괘가 변한 천풍구괘는 구오(九五)가 불변하여 괘의 기준이 되니, 이것이 용(用)이 된다.(역학계몽) 따라서 천풍구괘의 상괘 건乾괘 가 용괘이고, 하괘 손巽괘 가 체괘가 되니, 건괘의 금(金)이 손괘의 목(木)을 극한 것이다. 오행이 상극관계이니 이순신은 흉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점괘는 미래의 재앙을 예견한 것으로 결국 원균이 63일 이후 칠전량 해전에서 패망함을 예견한 역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순신은 백의종군 중에 자신을 모함한 원균의 미래 앞날에 대해 소옹의 주역점으로 예측하였고, 그것이 나중에 현실로 이루어진 것을 목도하였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기까지 이순신은 천리에 관통한 혜안으로 현상을 읽고 주역에 대한 남다른 학식으로 괘풀이를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이치를 궁구하고 응변하여 마음으로 이치를 깨닫는 역리이다.

이제 새해를 맞아 이러한 이순신의 주역 이론으로 갑진(甲辰)년의 세운을 풀어 보겠다. 우선 갑진을 『주역』으로 괘를 뽑으면, 본괘는 천풍구괘이고, 6번째 상구(上九)가 동하여 변괘는 대과괘(大過卦)이다. 그럼 갑진년의 세운은 천풍구괘 상구효사의 "그 뿔에서 만나니 부끄러우나 허물은 없다[姤其角, 吝, 无咎]"는 괘사에 해당한다. 이에 대한 해석은 대략 "정상에 오른 자리가 뿔이 나면 매우 불편하니 허물이 없도록 자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괘사에 대해 소옹의 스승인 진박(陳摶)은 "진취하면 반드시 상위를 차지할 수 있고 승려는 주지가 되는 상이나 사환의 길에는 시기가 많으니 용감히 물러나면 화를 면한다"고 하였다. 이는 작은 것에 만족하면 상위를 유지할 수 있으나 권세에 큰 욕심을 내면 화를 당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소옹은 "이 괘사로 세운을 보면, 궁극의 조짐이니 궁하면 변통할 수 있다. 오랜 곤궁을 겪지 않으면 어찌 탁 트인 영화를 볼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오랜 어려움을 겪으면 상위의 뿔자리를 만나도 오히려 잘 극복하여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다.

요컨대 갑진년의 한해는 수양자의 자세로 작은 일에 만족하며 과도한 경쟁을 삼가고, 현실이 어려울 지라도 그 가운데에서 내실을 쌓는 것이 미래 발전의 관건임을 되새기며 노력하는 생활을 해야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내용은 단순한 점사가 아니고 소옹이 주역의 심오한 이론으로 천리와 인사를 해석한 것이기에 지금까지도 세인의 삶에 유용한 것이다. 더욱이 이것이 이순신에게도 영향을 준 주역이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남다를 것이다.

* 참고문헌 : 소옹의 『황극경세서』, 『소옹집』, 『하락이수』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태그:#이순신, #노승석, #송대상수학, #소옹주역점, #갑진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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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학자. 문화재전적 전문가. 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자문위원(난중일기). 현재 동국대 여해연구소 학술위원장. 문화재청 현충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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