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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지금까지 호주 주택가격은 150% 올랐다. 같은 기간 임금 인상률은 50%에 그쳤다. 사진은 시드니 시내
 2000년 이후 지금까지 호주 주택가격은 150% 올랐다. 같은 기간 임금 인상률은 50%에 그쳤다. 사진은 시드니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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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등하는 집값에 집 없는 사람들은 허탈하다.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들은 내집 마련은 꿈도 '안' 꾼다. 한국 이야기가 아니다. 높은 집값에 따른 사회문제가 심각한 호주 이야기다.

지난 30년간 호주의 집값은 연평균 7%씩 상승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7.2%, 지난 10년간은 5%를 약간 웃도는 집값 상승률을 보였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집값이 150% 오르는 동안 자가 보유율은 70%에서 65%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실질 임금은 50% 오르는 데 그쳤다. 2019년 6월까지 이어지는 29개 분기 중 16개 분기 동안 시드니 주택 소유자들이 집값 인상과 임대료로 벌어들인 소득이 노동자들이 임금으로 벌어들인 돈을 앞섰다.

부동산에서 벌어들인 수익이 임금 인상률보다 높아지면서 호주 사람들은 너도나도 부동산에 투자했다. 수요가 많아지면서 시드니와 멜버른 등 대도시의 주택 가격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호주 집값이 오르는 이유

호주는 수요 주도형 주택 가격 인플레이션에서 세계적인 선두 주자다. 호주에서도 한국처럼 집값 상승으로 인한 자본 이익과 임대 소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집을 사는 경우가 많다. 집을 소비재가 아닌 이윤을 얻는 자산으로 보는 것이다.
  
호주에서 부동산 투기가 가능한 이유 중 하나는 시중 이자의 하락이다. 이자율이 낮아지면서 소득에 비해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되자 너도나도 집을 사기 시작했다.

GDP 대비 주택담보대출 비율은 1990년대 20%를 조금 밑돌던 것에서 2020년에는 80% 이상으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기업 대출은 38%에서 40%로 증가했을 뿐이다. 호주 은행의 주택 담보대출 통계에 따르면 생애 첫 주택 구매를 위해 대출을 받은 사람의 비율은 1990년대 22%에서 2000년대 17%로 떨어졌다. 반면 기존 주택을 담보로 주택을 추가 구입하는 투기 목적의 주택담보대출의 비율은 같은 기간 14%에서 38%로 늘어났다.

그러나 과거에도 이자율은 낮았다. 1960년대의 경우 2010년대 집값이 폭등하던 때와 이자율이 비슷했지만 이 때는 집값 폭등이 일어나지 않았다. 낮은 이자율은 집값 폭등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호주의 주택 유형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호주에는 공공주택이 거의 없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공공주택이 많이 지어졌지만 곧 민영 주택으로 바뀌었다. 공공주택은 줄고 민영주택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주택 건설용 토지의 공급이 제한된 가운데 많은 신용이 유입되자 가격과 담보가치 상승이 일어났다. 이것이 더 많은 대출과 더 높은 가격을 자극하는 사이클을 일으켰다.
   
마지막으로 호주의 유별나게 관대한 부동산 세금을 들 수 있다. 다주택자는 양도소득세 할인을 받는 동시에 임대용 부동산 운용에 드는 전체 비용(이자비용 포함)을 수입에서 공제받는다. 다시 말해 주택 담보 대출을 받아서 주택을 산 사람들은 임대 소득을 받아서 대출금을 갚게 되는데, 임대 소득이 갚아야 할 대출금보다 적은 경우 그 손해에 대해서 정부가 세금 혜택을 준다. 이를 '네거티브 기어링'이라고 한다.

낮은 이자, 부족한 공공주택, 낮은 부동산 세금. 한국과 판박이다. 낮은 이자에 따라 시중 유동성이 주택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으려고 고심하는 것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공공주택과 세금 인상은 정부의 의지에 따라 해결할 수 있다. 한국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지난 7.10 대책과 8.4 대책을 통해 부동산 세금을 대폭 올리고 공공주택을 확충하기로 했다. 이에 비해 호주는 이제야 집값 폭등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단계다.
  
이제야 집값 안정 대책 논의하는 호주

호주에선 얼마 전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조시 라이언 콜린스 런던대학 혁신과공익연구소 선임 연구원과 시드니 대학 캐머런 머레이 연구원은 '집이 임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2020년 8월)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호주에서 거주보다는 처음부터 토지 가격 상승과 임대료 수익을 목적으로 주택을 사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로 인한 집값 폭등을 막기 위한 여러 정책 대안을 제안했다.

이들은 우선 담보 대출에 강력한 규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담보대출이 1950~1960년대에는 새로운 주택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고 주택 소유를 늘리는 데 도움을 줬지만 지금은 집값 폭등이라는 부작용만 일으킨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또 주거용 부동산의 가치가 올라 생긴 소득과 주변 택지 이용의 변화로 생긴 토지가격 상승분에 대해 세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사례로 든 것은 독일이다. 독일에선 지방 당국이 택지개발계획 허가를 내줄 때 미래 토지 가격의 상한선을 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공공기관들은 기반시설용 토지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재매입할 수 있고 토지가격의 상승으로 인한 이익은 공공의 이익이 된다.
  
이들은 임차인들의 권리 증진 역시 주택가격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임대료가 저렴하고 임대 기간이 보장된다면 주택 구매 압력이 완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호주의 임차인들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다수가 불안정한 임대료에 시달리며 열악한 주택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두 연구원은 투기 목적으로 주택을 산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네거티브 기어링과 양도소득세 할인 폐지도 제안했다.

보고서를 보면 한국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주택은행도 하나의 대안 
  
호주에선 두 연구원의 보고서 외에도 집값 안정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중앙주택은행이다. 신규 주택 공급과 분양을 중앙주택은행에 맡겨 집값이 빠르게 오르거나 폭락하지 않도록 조절하자는 것이다. 이외에도 중앙주택은행은 다양한 종류의 임대 공공주택을 공급하고 사회적 약자에게 주택을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 등 안정적 주택공급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중앙주택은행 설립론자들은 말한다.

미국에서도 중앙주택은행을 통해 주정부 또는 연방정부가 집과 투자자의 자산(현금)을 교환할 수 있게 해주자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했다. 중앙은행이 금융시장의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금융자산과 현금을 교환하는 것처럼 중앙주택은행도 국내 최대 경제부문 중 한 곳에서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다.
  
<파이낸셜 리뷰>는 지난 26일(현지 시각) 호주 에이앤지(ANZ) 은행이 2021년 하반기까지 멜버른의 집값이 최고점에서 15%, 시드니는 13%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보도했다. 사상 최저 금리를 운영 중인 호주중앙은행이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쓸 수 있는 지렛대는 이미 바닥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 당국은 어떤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까. 호주의 고민과 해결책을 지켜보는 것도 한국 부동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태그:#호주,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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