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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절단 환자, 여전히 많아요... 달라진 건

[진료실에서 보내는 편지] 수부 재활치료실에 찾아온 현타

등록 2024.05.08 09:57수정 2024.05.0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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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린 손가락 바라보면서, 소주 한잔 마시는 밤.
덜걱덜걱 기계 소리 귓가에 남아 하늘 바라보았네 ♬

X세대들은 한 번쯤 들어봤을 수도, M, Z세대는 생소할 수도 있겠다. 1990년대 대학 노래패 시절 불렀던 김호철 님의 노래 '잘린 손가락'이다. 80·90년대에는 노래로 불릴 만큼 금속 제조업 현장에 손가락 절단 사고가 많았다. 예전에는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안전장치를 무시하고 일하다 보니 그랬겠지만, 지금은 이런 재래형 산재는 많이 줄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 직장에 근무하면서 전혀 그렇지 않다는 현타(현실자각타임)를 맞이한다. 달라진 것은 수부, 족부 손상 환자 중 심하게 다친 이가 이주노동자라는 사실 뿐.

절단 사고 직후 응급처치

절단된 부분이 제대로 보존된다면 수술과 치료의 예후는 대체로 좋은 편이다. 그만큼 응급처치가 중요하므로 사고 발생 시 응급처치를 먼저 살펴본다.

먼저 지혈. 절단 부위 직접 압박 후 심장보다 높이 들어 지혈한다. → 싸기. 절단 부위는 깨끗한 천이나 거즈로 싸고 다시 큰 수건으로 싼다. → 보관. 절단된 부위를 깨끗한 비닐봉투에 넣은 다음 얼음과 물을 1:1 비율로 채운 용기에 담아 보관한다(얼음에 직접 닿지 않게 주의) → 이송. 상온 6시간 이내, 냉장 12시간 이내 전문병원으로 이송한다.

응급환자가 내원하면 처치실에서 소독과 검사 후 뼈, 근육, 인대, 혈관, 신경, 피부 등의 상태에 따라 수술실에서 미세현미경 접합술이나 피판술을 시행한다. 물리치료실에서 가장 빨리 환자를 만나는 건 봉합 수술한 환자에 대해 수술 부위의 염증을 가라앉히고, 치유를 촉진하는 냉각치료를 위해서다.


사고를 겪은 지 하루나 이틀 정도 된 시기, 치료를 위해 부목이나 붕대 등을 풀어 봉합된 손상 부위가 드러나면 사고 발생 후 처음 상처부위를 접한 환자는 유심히 그곳을 살피기도 하고, 상처 부위를 휴대폰으로 찍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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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로 손가락이 잘린 노동자의 재활 치료 사진. 환자의 동의를 얻어 촬영했다. ⓒ 최선희

 
외상환자가 겪는 고통, 상담 지원체계 보완되어야

떨어진 기계에 발이 으깨져서 내원한 환자가 있었다. 방사선 사진을 보니 조직이 산산조각이 나서 절단술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음날 보호자가 휠체어를 밀고 환자는 한쪽 윗다리뼈에 붕대를 감고 치료실에 들어왔다. 냉각치료를 받으러 온 환자의 차트상 손상 부위는 발이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무릎 위까지 절단하게 된 것이다.

수술 부위를 감싼 4개의 붕대를 푸는 동안 보호자의 속울음이 들려왔다. 환자는 목소리도 잠겨 멍한 시선으로 짧아진 다리를 응시했다. 거즈와 메디폼을 떼려는 순간 지혈이 덜 됐음을 감지하고 바로 다시 덮었다. 소실된 다리를 확인하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는 환자를 위해 상처 소독 시 냉각치료 할 수 있게 조치하였다. 삽시간에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신체의 일부가 소실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고통이 쉬이 가늠되지 않았다.

사고 경험 환자들은 트라우마가 있어서 작업장에 들어가기가 두렵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자다가 다친 손이 정상적으로 움직여져서 일어나보니 진짜로 손이 움직여서, 가족들을 모두 깨우고 좋아했는데 자세히 보니 반대쪽 손이었다는 웃픈 얘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가끔 근로복지공단에서 심리상담 지원을 하지만 극소수에 불과하다. 외상환자가 겪는 고통에 함께하고 지원하는 보다 촘촘한 상담시스템이 필요하다.

쉬다 말고 출근하고, 갑자기 치료 종결되고

일하다 다쳤음에도 산재보험으로 치료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산재 신청하지 않고, 회사에서 모두 부담하는 경우이다. 일정 기간 근로불가 판정이 내려져 휴업급여를 받는 산재 환자들에게는 보통 주 3일 이상 나와서 재활 치료를 받으시라고 권한다. 나머지 날은 병원에 나오지 않아도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안내해야 할 때도 있는데, 알면서도 출근해 작업하다 치료받고 다시 회사에 가는 분도 있다. 분명 산재인데 출근한다고?

회사에서 바쁘니 나와서 손 많이 안 쓰는 일이라도 하라고 하면 눈치 보여서 나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휴업급여가 평균임금의 70%밖에 안 되는데, 30% 차액이면 거의 100만 원 가까운 돈이니 경제적 이유도 있다고 한다. 손을 쓰지 않는 일이 얼마나 있겠냐며 쉬면서 치료받아야 치료 효과도 좋다는 조언도 하지만 을의 선택지에서 '쉬면서 치료받을 권리'는 교과서적인 얘기에 불과하다.

양쪽 손에 손가락이 세 개씩만 남아있는 한 이주노동자는 일하다 손을 다쳤다. 그가 이사님이라 부르는 사장 형님도 일하다 손을 다쳐 치료받았다. 이사는 이주노동자가 솔선수범하는 친구이지만, 양손을 제대로 사용 못하니 회사 복귀 후 시킬 수 있는 일이 없어서 고민이라고 했다. 치료가 끝나면 본국으로 보내야 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 이주 노동자가 4월 초 "이번 달까지만 치료받아야 된다고 해요. 더 이상 안 낫는다고 해요" 했다. 남아있는 손가락 상처에 할 수 있는 여러 수술 방법을 얘기해왔던 터라 내가 듣기에도 너무 급작스러운 종결선언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였으나 코로나로 하루 공장 아르바이트를 갔다가 사고로 왼쪽 아래팔뼈가 압착된 노동자도 역시 진료실에서 4월 말 치료종결을 얘기했다고 했다. "뼈이식 수술 한다고 했었잖아요?" 물었더니, 다음 진료 때 한번 얘기해봐야겠다고 한다.

대부분의 환자는 주치의가 더 이상 호전이 없을 것 같다고 하면 자포자기한다. 1%의 회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고통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데도 말이다. 여러 치료 가능성을 얘기하던 환자 둘이 갑자기 치료 종결을 선언받다니, 고용노동부의 특정감사 영향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드는 대목이었다(한국노총이 지난달 중순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특정감사 이후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부적절하거나 부당한 산재 판정-결정을 경험한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36%가 "그렇다"고 답한 걸로 나타났다 - 편집자 말). 

차트에 적힌 병력을 보면 사고가 일어난 사업장에서 또다시 사고가 발생하고, 손가락 운동치료를 하다 보면 이미 재해를 입었던 손가락을 가진 환자를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사고가 났던 기계, 설비에 안전장치만 달았어도, 두 번째 사고는 없었을 것이다.

재해 발생 보고가 누락 되는 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산재가 반복되는 사업장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한 결과를 확인하는 감독기관의 역할이 절실히 요구된다. 또 일하다 다친 것도 억울한 산재 환자들이 눈치 보지 않고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근로복지공단의 노력이 아쉬울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최선희(가명)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으로 물리치료사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5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산업재해 #손가락 #이주노동자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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