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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탈출? 경제 청신호? 잘못된 진단이 큰 일 낸다

[진단] 성장률이 일시적으로 반등했다 해도, 물가 못 잡으면 백약이 무효

등록 2024.05.06 18:38수정 2024.05.0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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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4월 2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등 경제 현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25일, 올해 1분기 실질성장률이 시장 예상을 크게 웃도는 1.3%라고 발표했다. 이에 한껏 고무된 정부는 국정철학인 '민간주도, 시장 중심' 정책에 힘입어 내수와 수출의 쌍끌이 성장을 견인했다며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기재부는 이례적으로 백브리핑까지 열고, "우리 경제의 선명한 청신호", "재정에 의존한 성장이 아닌, 민간 주도 성장의 모습" 등으로 질 좋은 성장임을 홍보하는데 여념이 없다.

그러나 중산층과 서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금융위기 수준인데, 데이터가 내수 불황에서 벗어나 강력한 회복세를 뒷받침한다고 하니 그저 당황스럽기만 하다. 경기가 진심으로 좋아졌다고 하니 민생확대 재정도 물 건너갔고, 금리인하 시점도 하반기 저 너머로 밀려날 판이다.

성장의 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표에서 사라진 맥락을 찾는 게 중요하다. 하여, '1.3%짜리 분기 성장'이 구조적 성장의 청신호인지, 아니면 저성장 충격에 따른 기저효과인지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찾지 못한 "우리 경제의 선명한 청신호"

먼저, 장기 성장의 틀 안에서 올해 분기 성장이 놓여 있는 위치를 확인해 보자. 연간 경제성장률은 2021년 4.3%→2022년 2.6%→2023년 1.4%로 2021년 이후 기조적 하락세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작년 성장률 1.4%는 우리 경제가 금융위기가 아니어도 1%대 미만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지난 60년 동안 1%대 미만의 저성장 충격을 경험한 적이 다섯 차례인데, 4번의 경제위기 사례를 빼면 작년이 유일하다.

이러한 성장구조하에서 올해 1분기 1.3%의 반짝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정부는 작년에 경험한 저성장 충격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올해 1분기 성장률이 발표되자 한껏 고무된 상태다. 정부의 설명처럼, 구조적 성장의 청신호이길 바라지만, 일시적 기저효과라면 위기관리를 예고하는 경고음일 수 있다. 경제 상황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객관적이고 보수적이어야 하는 이유다. 그럼, 부문별로 하나씩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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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두한

 
경제의 50% 가까이 차지하는 민간소비는 작년 4분기 0.2%에서 올해 1분기 0.8%로 의미 있는 수준의 반등을 보인 게 맞다. 민간소비의 GDP 기여도(+0.4%p) 역시 성장률 회복을 견인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내수는 3高(고물가·고금리·고환율) 여파로 만성적 불황에 빠졌다 하는데, 그렇다면 1분기 소비 증가에 기여한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올해 1분기에 총선 수요가 일시적 요인으로 소비 진작에 영향을 미친 측면이 있다. 경제활동별로 보면, '도소매·숙박음식' 서비스업이 1.4% 증가한 것도 총선 수요가 반영된 측면이 있다. 둘째, 정부의 재정집행이 1분기에 집중되면서 소비 증가에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올해 1분기에만 전년 같은 기간보다 47.4조 원이 늘어난 213.5조 원을 조기 집행했다. 중앙정부 재정 기준으로는 1분기에만 예산의 41.9%가 집중적으로 투입된 셈이다.


민간소비 회복세가 하반기까지 이어지기 어려운 이유를 살펴보자. 올해 1분기 0.8% 성장했지만, 연간(1년 전)으로 비교하면 여전히 1.1% 수준에 머물고 있다. 기조적 회복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다, 일시적 총선 수요는 이미 소멸되었고 재정집행 여력도 1분기 조기 투입으로 상당 부분 소진된 상태다.

경제활동별 GDP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전기·가스·수도업종'은 공공요금 인상에 힘입어 작년 4분기 8.8%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1.8%를 기록할 정도로 증가세가 가파르다. 반면, 고물가의 진원지인 '농림어업' 분야는 작년 4분기 -6.7%, 올해 1분기 -3.1% 등으로 사실상 금융위기에 준하는 비상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처럼, 고물가 관련 산업의 행태를 보면, 향후 민간소비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1분기 민간소비 증가는 일시적 요인에 기인하지만, 내수 경기는 고물가·고금리 등 기조적 요인에 노출된 상태다. 1분기 성장률 착시에 매몰되면, 내수 불황이 장기화되는 구조적 위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건설투자 증가는 기저효과, 설비투자 감소는 성장률 하락 예고

우리 경제의 20% 정도를 차지하는 기업투자는 크게 건설투자와 설비투자로 분류되는데, 특히 설비투자는 앞으로의 성장률 하락이나 상승을 예측하는 가늠자가 될 수 있다.

먼저, 올해 1분기 건설투자 회복이 단순한 기저효과에 불과한 이유를 살펴보자. 건설투자는 작년 4분기에 -4.5% 급락한 후 올해 1분기 들어 2.7%로 급반등했지만, 1년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마이너스 성장(-0.6%)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2년 연속 바닥으로 추락하는 건설경기가 정부의 재정 및 금융 지원 등에 힘입어 일시적 반등을 보인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향후 글로벌 주택경기가 본격적인 하강 국면이 진입하고 부동산PF 등 잠재 부실이 현실화되면, 부동산발 경기충격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열려있다.

한편, 건전재정의 최대 수혜자인 기업 '설비투자'는 작년 4분기에 3.3% 증가했다가 올해 1분기 들어 다시 -0.8% 역성장했다. 정부가 세수펑크 충격을 감수하며 법인세를 깎아준다 해도 경제가 어려울 때 기업이 미래에 투자하지 않는다는 점이 일정 부분 입증된 셈이다. 설비투자 감소는 올해 1분기 이후 성장률 하락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건설투자 증가는 기저효과를 반영한 결과이고, 역성장한 설비투자는 앞으로의 성장률 하락을 예고하는 것이다. 기업 확장재정은 경기 바닥·고금리 구간에서 투자 효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 큰 문제는 정부소비의 낮은 GDP 기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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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 물가 넉달째 상승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3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122.21)보다 0.2% 높은 122.46(2015년=100)으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로 지난해 12월부터 넉 달째 오름세다. 세부 품목 중에서는 배추(36.0%), 양파(18.9%), 김(19.8%) 등의 상승률이 두드러졌다. 사진은 4월 23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배추를 고르는 시민의 모습. ⓒ 연합뉴스

 
올해 1분기 성장률 1.3% 중에서 민간은 1.3% 기여한 반면, 정부의 기여도는 '0%'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설명은 국정 철학인 '민간 주도, 시장 중심' 정책이 옳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입증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괴변에 가까운 아전인수 해석이다.

경제 주체들은 각자 주어진 역할 안에서 성장에 기여해야 한다. GDP 구성에서 정부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이기 때문에, 그 범주 안에서 경제 성장에 일조하는 것이 정상이다. 경제가 어려울 땐 정부소비를 확대해 경기 방어 역할을 강화해야 하고, 경제가 좋을 땐 정부소비를 축소해 경기 조절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일례로, 2020년 코로나발 경기충격으로 성장률이 -0.7%로 급락했을 당시, 정부가 경기 방어에 나서 GDP 기여도를 0.9%p까지 끌어올린 바 있다. 연도별 성장률과 정부의 GDP 기여도를 살펴봐도, 정부의 역할(GDP의 20% 안팎)이 왜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성장률(정부의 GDP 기여도)은 2021년[4.3%(1.0%p)] → 2022년[2.6%(0.7%p)] → 2023년[1.4%(0.2%p)]이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이 1.3% 수준임에도, 정부의 성장 기여도가 극단적으로 낮은 것은 재정운영에 하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건전재정의 기업 편향이 불러온 세수펑크 참사(-56.4조원), 사상 최대규모의 예산불용(45.7조 원) 등 무질서한 재정정책이 정부의 성장 기여도를 낮춘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소비의 낮은 GDP 기여도는 민간주도, 시장 중심 정책이 거둔 경제적 성과가 아니라, 건전재정 기조를 폐기하라는 경고장인 것이다.

분기 성장률에 가려진 진짜 위험은 '부채발·물가발' 민생대란

분기 성장 1.3%에 가려진 중대 위험은 구조적 리스크로 진화 중인 고물가·고금리 충격이다. 올해 들어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지면서 공공발 물가대란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인다. 올해 3월 기준, 소비자물가는 3.1%에 불과한데, 과일류 소비자물가 38%, 농축수산물 물가 11.7% 등으로 민생물가는 이미 감내할 수 있는 임계치를 넘어선 상태다. 여기에다, 하반기 공공요금 인상까지 겹친다면, 물가발 민생대란 사태로 번질 수 있다. 올 초 성장률이 일시적으로 반등했다 해도 물가를 잡지 못하면 백약이 무효인 총체적 난국에 빠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성장률 착시로 인해 한국은행의 금리인상 시점이 하반기 후반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다. 2019년 이후 발생한 코로나부채(가계대출, 자영업자대출, 중소기업대출) 증분만 1000조 원을 넘어섰다. 민생부채의 경착륙 위험이 커지고 있으며, 유일한 부채대책은 금리인하뿐인 상태다. 지금과 같은 고금리 국면이 장기화된다면, 부채발 민생대란 사태를 막아낼 방법이 없다.

정리하자면, 1분기 성장률 지표에 가려진 민생경제는 고물가·고금리 충격의 직격탄을 맞아 비상경제 상황에 직면해 있다. 지금은 민생 확대재정을 통해 특단의 소득보전 및 내수진작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아울러, 강력한 물가대책으로 금리인하 시점을 앞당기는데 모든 정책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성장률 #민생경제 #고물가 #고금리 #비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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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한 박사 ㆍ국민대학교 특임교수 ㆍ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ㆍ전) 농협금융연구소 소장 ㆍKDI 경제정책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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