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쉬어가도 괜찮습니다, 이야기 있는 마을 숲

임실 성수면 수월마을 역사 문화 탐방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등록 2024.04.24 18:23수정 2024.04.2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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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이야기가 있는 시골 버스 정류장 ⓒ 이완우

 
전통 마을에 조성된, 오래된 마을 숲은 그 마을의 역사, 문화와 신앙 등을 반영한다. 느티나무가 밝은 연두색 잎을 피우며 나무 그늘조차 환해지는 4월 하순에, 임실 성수면 수월마을의 마을 숲을 찾아서 탐방 여행을 떠났다. 이 마을의 뒷산인 성산에는 백제 시대에 축조한 월평리 산성이 있다. 수월마을 앞을 지나는 도로는 오래된 옛길로서 한양에서 통영으로 이어지는 통영별로 지름길의 한 구간이었다. 

통영별로는 한양에서 전주와 남원을 거쳐 운봉고원을 지나 통영으로 향하는 역참로(驛站路)였다. 장인이나 평민들은 임실에서 바로 운봉고원으로 가는 지름길 구간이 경제적이었다. 수월마을에서 옛길은 삼청리를 지나 영대지맥 산줄기인 한치재를 넘는다.


옛길이 신작로로 바뀌고 이제 어엿한 도로에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버스 정류장에 그려놓은 여유로운 그림과 글씨에 마음이 끌려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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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성수면 월평리 산성 ⓒ 이완우

 
월평리 산성으로 오르는 계곡은 큰 바위 절리가 틈이 가서 서로 겹쳐 쌓여 있었고 어디선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성산은 큰 산이 아닌데 물이 의외로 풍부했다. 산속의 평지에도 곳곳에 습지가 있었다. 성벽은 일부가 남아 있었고 대부분 무너져 내리고 있다. 

월평리 산성은 성산의 250m 높이의 정상부에 둘레 500m 정도 규모로, 3개소의 성문터와 계단식 건물터가 있다고 한다. 백제의 건물터와 후백제 때 지어진 건물터가 발견되었고, 백제의 성벽 축조 기법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 산성은 섬진강 유역에 세력을 확보하려는 고대 국가의 국경 요새로서 역사적인 장소였다. 

월평마을에 비봉재(飛鳳齋) 재실이 둔남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산의 성터는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비봉포란(飛鳳抱卵) 형국으로 명당 터란다. 봉황 명당은 상서로운 길지이므로 봉황이 날아가지 않게 풍수적 비보(裨補)를 한다는데, 대나무 숲이 성산 곳곳에서 푸르게 자리 잡고 있었다. 월평마을 안의 표지판에 쓰인 산성 마을, 성촌, 성산촌 등의 표현은 이 마을의 자부심으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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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성수면 수월마을 마을 숲 ⓒ 이완우

 
수월(水越)마을은 '물이 마을 언덕으로 넘어왔다.'라고 해서 '무너미(물넘이)'라고 부른단다. 물이 마을 언덕을 넘어왔다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이 마을과 마을 숲을 찾아오게 된 동기였다. 어떤 지역에는 '무너미 고개'가 있는데, 홍수 때 하천에서 고개로 물길이 넘쳤다는 이야기가 그 지역에는 전해온다. 또는 지하수의 수맥이 지형적 특성으로 고개를 넘어 가는 곳이 있는데 그런 곳도 '무너미 고개'라고 한다. 

수월 마을 숲은 나무 높이가 20m에 이르는 우람한 느티나무와 개어서나무를 중심으로 20여 그루가 마을의 좌측 북동쪽에 낮은 산줄기를 따라 길게 조성되어 있다. 마을 좌측 산줄기가 낮기 때문에 겨울철 찬 바람을 막기 위하여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이 수월 고개에 성수면 소재지로 향하는 지방도로가 지나가므로 마을 숲이 양쪽으로 나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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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성수면 수월마을 마을 숲 당산나무 ⓒ 이완우

 
마을 숲을 따라 거닐어 보았다. 키 큰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가 하늘을 덮었는데 길가의 풀숲에 키 작은 꿀풀과의 어슷비슷한 꽃들이 어울려 피었다. 붉은빛이 도는 자주색으로 꽃부리의 입술이 인상적인 광대나물, 연한 자색으로 허브처럼 향기를 발산하는 긴병꽃풀, 모시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선비들의 무리 같은 광대수염. 눈여겨보면 이들 세 가지 꽃은 꿀풀과로서 꽃 모양이 비슷하지만, 색깔과 모양이 조금씩 달라 개성적이다.

수월마을이 자리 잡은 성산은 금남호남정맥에서 분기한 영대지맥 옥녀봉에서 산줄기가 뻗어 내려왔다. 마을 숲을 양편으로 거느린 곳은 고갯마루였다. 이곳 수월마을의 마을 숲은 산줄기를 잇는 특별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고갯마루 부근은 토양이 유실되어 마을 숲을 이루는 거목들의 뿌리가 드러나 있었다. 


수월 고개의 마루인 수월정 정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 올라갔다. 마을에서 수월정까지는 도로에 경사가 있어서, 올라가는데 물길과 나의 걸음은 방향이 반대이다. 그런데 고갯마루를 넘으니 어느새 농수로의 물길이 방향을 바꿔서 앞서 흘러가고 있었다. 고갯길에서 물은 흘러 내려가도 마음은 멈추었다.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이야기가 있는 마을 숲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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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 수월마을 마을 숲 개념도 ⓒ 이완우

 
#수월마을마을숲 #월평리산성 #월평마을비봉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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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입니다. 향토의 역사 문화 자연에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롭게 인식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아서 여행의 풍경에 이야기를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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