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 영화 <웡카>에서 배우는 중2 육아

초콜릿처럼 부드럽게... 딱딱한 마음으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등록 2024.03.28 10:15수정 2024.03.28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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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저녁, 아이랑 싸웠다. 내 성질만큼 뱉지 못했다. 쏟지 못한 분노로 수영장 20바퀴를 돌았다. 마음이 힘들면 몸을 조지라는 말은 진리였다.


수요일 아침, 아이가 학교를 안 가겠단다. 학교가 힘들다고 한 지 10개월 째다.

"그래서 너 전학 보내준다고. 가기 전까지 너도 노력하는 성의는 있어야지. 니 귀에 대고 갑자기 소리 지른 애한테 넌 더 크게 질러버려. 만만하게 볼 여지를 주지 마."

아이는 제가 이 모양이라 미안하다고 했다. 그 소리 듣자고 하는 말 아니라고, 노력해보겠다는 다짐을 하라며 식탁 위 아이 문제집을 탕탕 내리쳤다. 아이가 어깨를 움찔거리며 눈물이 터지고서야 나는 정신이 들었다.

속시끄러운 침묵이 잠깐 흘렀다. 내가 더 미안하다며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나를 안지 않았다. 

"날도 좋은데 기분 전환하러 한강? 카페? 쇼핑?"


슬그머니 고개를 들더니 <웡카>를 보고 싶단다. 동대문에서 대학로CGV 진입하는 2km를 지나는데 25분이 걸렸다. 나는 애가 타는데 아이는 즐겁다. 요새 입덕했다는 밴드 LUCY와 소련 여자 이야기다. 니가 소련을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교보문고 사인회를 하는 100만 유튜버였다.

LUCY는 나도 입덕할 만큼 좋았고 소련 여자는 어디서 웃어야 하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조금 전에 화냈던 엄마에게 제 일상을 나누는 아이가 고마웠다. 자기 세계에 들어와도 된다는 초대장 같아서다. 다 이해 못한대도 초대장 자체에 힘이 나는 사람이 엄마다. 같이 웃기 위해 공부해야겠다.

웡카 엄마는 웡카가 열 다섯살이 되기 전에 죽었다. 싸움은커녕 둘 사이의 애틋함만 남겼다. 웡카를 돕는 누들은 신생아 때 엄마와 헤어졌다가 열 살 쯤 다시 만났다. 누들과 엄마는 그 후에 안 싸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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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웡카'의 한 장면 판타지에서 부드러움을 배운다 ⓒ 웡카


이틀 동안 벌어진 전쟁 덕에 잠깐은 질문이 떠올랐지만 웡카 역의 티모시 얼굴은 달콤했고 초콜릿은 재밌었다. 현실을 보라며 싸워댄 나는 판타지에서 배운다. 딱딱하지 마, 초콜릿처럼 사르르 녹아 봐, 딱딱한 마음으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아이에게도 그 판타지가 전달됐을까. 어느 샌가 내게 기대어 영화를 본다. 나는 아이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중2 육아를 '이렇게까지 애써야 한다고?' 했던 억울함도 같이 쓸어보내고 싶었다.

농구 수업 보강날이었다. 나는 기사 노릇하느라 수업 참관을 했다. 홍일점으로 5:5 게임을 한 아이는 36점 중 24점을 넣으면서 코트를 날아다녔다. 마음이 힘들 때 몸을 조지면 된다는 진리를 아이도 깨달았을까. 그 힘으로 학교가 덜 힘들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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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점으로 뛴 5:5 농구게임 마음이 힘들 땐 몸을 조지면 좋다 ⓒ 최은영


목요일 아침, 아이는 별 말 없이 학교에 갔다. 영화 <웡카>로, 농구로 충전된 배터리가 이 하루를 단단히 지탱하리라 믿고 싶다. 내일 올 파도에 맞서기 위해 나도 수영장 가방을 챙긴다. 25바퀴를 성공하면 더 단단하게 부드러운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웡카 #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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