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7시간 일하고 기본급 20만원, 정말 너무하네요"

정쟁으로 불발된 보건복지위 예산안 합의, 피해는 고스란히 '약자'에게

등록 2017.11.26 11:39수정 2017.11.26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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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국회에서는 내년 예산안 심의가 한창 진행 중입니다. 정치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있는 예산들, 정쟁에 묻혀 있는 민생 예산의 현주소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해 두 차례에 걸쳐 들여다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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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무개(87) 할머니가 22일 오후 인천시 계양구 자신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방문한 허은미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를 배웅하며 현관 앞까지 손을 흔들어주고 있다. 정아무개(87) 할머니는 "혼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문만 두드려도 반갑다. 나는 이 아줌마(독거노인 생활관리사)만 오면 제일 좋다"고 말했다. ⓒ 유성호



"아이고 연지곤지 다 바르셨네, 어데 갈라고? 어제 보고 오늘 또 보고 정든다. 클났다."


인천시 계양구의 한 빌라촌. 22일, 삐걱거리는 계단을 익숙하게 올라간 허은미(58)씨가 201호 문이 열리자마자 말을 쏟아낸다. 정아무개(87) 할머니의 집이다.

옅게 입술을 바른 정 할머니는 수줍게 웃으며 "아이고 정들어 클(큰일)났다"며 말을 받는다. 빌라 문을 열자마자 풍기는 건 진한 파스냄새, 마룻바닥은 냉골이다. 무릎이 성치 않은 정 할머니는 안방 침대 머리맡에 함께 앉자며 허씨를 잡아 끌지만 허씨는 "바닥이 편타"며 주저앉았다.

"아이고 미안시러버서, 커피라도 한 잔..."

수차례 권했지만 끝끝내 커피 권유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정 할머니도 방바닥에 함께 앉았다. 두런두런 수다가 시작됐다.

"반찬 괜찮으셨어? 숙주나물 짜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난 짜게 먹는 편이라. 오늘 올 일이 없는데 온다 카기에 틀림없이 김치 가져온다 싶어서 오지 말라했지."

반찬을 가져다 준 허씨는 구립계산노인복지센터 소속 독거노인생활관리사다. 허 관리사와 정 할머니가 인연을 맺은 지도 1년여가 지났다. 허 관리사는 일주일에 한 번 정 할머니 집을 방문하고, 일주일에 두 번 안부 전화를 한다. '독거노인 안전 확인'이 생활관리사들의 핵심 임무다. 고독사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허 관리사는 총 27명의 독거노인을 관리하고 있다.


"누가 문만 두드려도 좋다"는 어르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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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미 구림계산노인복지센터 소속 독거노인 생활관리사가 22일 오후 인천시 계양구 정아무개(87) 할머니 집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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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에 가입된 어르신은 ‘안심폰’을 통해 독거노인 생활관리사와 음성영상통화를 할 수 있고, 홀로 외로운 죽음을 맞는 일이 없도록 한다. ⓒ 유성호


"넘의 부모한테 이리 잘하는 사람이 어디있노. 아들 딸보다 낫지. 거기가 두 번씩 전화하드나. 사람이 혼자 가만히 앉았다가 누가 문만 두드려도 좋은기라. 이 아줌마 오면 제일 좋다. 잘 웃기고."

정 할머니는 "미안 시러버서(미안해서)"를 말끝마다 붙이며 허 관리사 칭찬을 이어갔다. 30~40분 씩 할머니와 말벗을 해드리고 속 얘기를 들어드리는 것, 한여름에 땀을 많이 흘린 정 할머니의 건강을 염려하며 도와드릴 방법을 찾는 것도 허 관리사의 역할이다. "딸보다 낫다"는 얘기가 스스럼없이 나오는 이유다. 허 관리사는 반찬이나 김치 등을 후원하는 곳과 어르신들을 연계해 물품을 전달하는 일도 함께하고 있다.

정 할머니 빌라 인근 또 다른 빌라 반지하에 사는 이아무개(83) 할머니도 허 관리사가 찾아뵙는 어르신 중 한 명이다. 얼마 전 집 수리 봉사 업체와 연계해 할머니 집 외벽과 장판 등을 손봤다.

"선생님이 댕기면서 안 봤으면 누가 해주겠어. 다 선생님 덕분이여. 만날 어디서 먹을 거 가져다 주고, 상 줬으면 좋겠어. 항시 전화해싸코 얘기하다 가고. 장판까지 해주니 더 고맙지. 장판이 우글거려서 몇 번을 넘어졌어요. 새벽에 변소 갔다가 넘어져서 대문까지 기어가서 문고리 잡고 밤새 일어났어. 얼마나 혼났는데. 참말로 고맙지."

허 관리사는 "아~할머니 집에 쇠 봉 달아드리면 좋겠다. 화장실 갈 때 좋게. 내년에 봉 달아드리는 거 건의해 볼게요"라며 할머니에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을 금세 찾아낸다. 

주휴수당 지급하는 예산 증액안에 합의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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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미 구림계산노인복지센터 소속 독거노인 생활관리사가 22일 오후 인천시 계양구 반지하 셋방에 홀로 사는 이아무개(83) 할머니 집을 방문해 일주일 동안 있었던 일에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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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 생활관리사는 어르신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부터 온갖 불편까지 해결해 주는 든든한 존재이다. ⓒ 유성호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주 5일 근무지만 실제 근무시간은 훨씬 길다. 독거노인 전수조사 할 때는 300명 정도의 어르신 집을 일일이 방문해야 한다. 부재시 만날 때까지 수차례 반복해 찾아가야 한다. 평상시에도 어르신 방문 후 매일매일 일지를 써야 한다. 이것만 해도 두어 시간이 소요된다. 후원품이 나오면 수령해서 전달하는 것도 허 관리사의 몫이다. 실제 근무시간은 7~8시간을 상회한다. 

"최저임금 받아요. 5시간 근무 기준이라 뭐 다 빼고 나면 71만 원 나와요. 부차적인 일들 할 것도 굉장히 많은데 그런 거에 비해서는 보수가 말도 못하게 적죠. 정신적으로 힘들기도 해요. 24시간 대기거든요. 한 어르신 댁에 방문했는데 안 계시면 계속 전화하고 확인해야 해요. 통화가 될 때까지. 계속 신경 쓰는 거예요. 머리맡에 휴대폰을 항상 두고 자야 해요. 우린 휴가도 못가요. 3일 이상 휴가 쓰면 다른 사람이 내 일을 대신해줘야 하거든요. 민폐 끼쳐야 하니까 못 가죠. 휴가 중에도 관리하는 분들 방문해야 하니 쉬는 게 아니죠."

그럼에도 8년 동안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뭘까.

"어르신들과 정 나누면서 일하는 게 참 보람돼요. 봉사하면서 돈도 번다, 이렇게 생각하면 참 좋죠. 젊은 친구들은 잘 못 버티고 금방 그만두더라고요."

이 같은 독거노인 생활관리사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주휴수당이라도 제대로 지급하기 위해 보건복지위원회 예산소위는 정부안에서 63억 9800만 원 증액하는 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9200명 가량의 생활관리사들이 추가로 받게 될 돈은 7만 2000원 남짓. 허 관리사에게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제가 8년 차인데 처음에 60만 원 받았어요. 8년 일하고 11만 원 올랐네요."

예산 소위에서 합의했지만 해당 예산안이 실제로 증액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아동수당과 기초연금 인상에 대해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며 복지위 예산안 심사 자체가 파행됐기 때문이다. 복지위 내에서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하면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원점에서 다시 심사하며 예결위에서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정부 원안이 그대로 본회의에 상정되게 된다. 결국 아동수당과 기초연금 인상안에 대해 여야가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으며 정쟁을 펼쳐, 애써 합의안 증액 논의 모두가 물거품이 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런 국회 상황을 전하자, 허 관리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는 항상 밀리네요. 그래도 자꾸 자꾸 두드려야 해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변하죠."



"하루 17시간 일하고 기본급 20만 원... 정말 너무하네요"
여야 싸움으로 인해 꽉 막혀버린 복지위 예산안으로 피해보는 이들은 또 있다. 바로 보육진흥원 소속 현장관찰직이다. 현장관찰자 197명은 전국의 어린이집을 직접 방문해 평가인증하는 일을 한다. 어린이집 환경과 운영관리, 보육 프로그램, 교사와 아이 간의 상호작용, 교직원 처우 등 어린이집 전반에 대한 것을 모두 평가하는 역할이다.

전국 어린이집의 균등한 발전을 위해 필수적인 평가 업무를 맡고 있지만 이들에게 지급되는 기본급은 20만 원이 전부다. 복지위 예산소위는 현장관찰자들의 급여 인상 등을 위해 21억 7200만 원 증액에 합의했다. 그러나 이 역시 무산될 위기에 처해있다.

22일 만난 박영희 현장관찰직 노조위원장은 "현장관찰직 일을 10년 했는데 지난해 들어온 사람이랑 기본급, 일당이 똑같다"라며 "시간이 흐르면 나아지겠지, 우리 처우도 개선해주겠지 했는데 똑같다, 이제 기다리다 지쳤다"라고 호소했다.

현장관찰자들은 방문하는 어린이집 수대로 일당을 쳐서 월급으로 받는다. 월급의 대부분을 수당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업무시간은 매우 길다. 오전 8시 반 경 어린이집에 방문하면 오후 5시 반까지 평가를 진행한다. 여기서 업무 종료가 아니다. 현장 평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데 평균 5시간이 소요된다. 게다가 어린이집으로 이동하는 데 평균 4~5시간이 걸린다. 총 업무시간으로 치면 17시간에 육박한다.

하루 전 강원도 삼척의 한 어린이집을 방문한 박 위원장에게 지급된 교통비는 5만 5000원. 왕복 560km 거리를 달린 기름 값과 톨 게이트 비용을 생각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에 거주하는 관찰직들은 '이해관계'에 얽힐 수 있어 아예 서울 외 지역 어린이집만 방문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일을 하려면 교통비가 들 수밖에 없지만 자신의 월급에서 모자란 교통비를 채워가며 일하고 있다.

박 위원장은 "20일 꽉 채워서 일할 때가 거의 없어서 대부분 200만 원에 못 미치는 월급을 받는다"라며 "어렵지만 긍지를 갖고 일했고 관찰직 모두 전문가인데 어떻게 이런 대우를 하나 화가 난다"라고 토로했다. 현장관찰직을 수행하려면 5년 이상 어린이집 근무 경력이 있어야 하고 해당 분야 학사 학위를 소지해야 한다. 상당수가 석박사 출신에 어린이집 원장을 하다 현장관찰자가 된 분도 많다는 것이 박 위원장의 설명이다.

박 위원장은 "개인적으로 기본급이 최소 50만 원은 돼야할 거 같다, 전문적인 일을 맡기면서 기본급이 없다시피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이 이 일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긍지'와 '자부심'

"10년 전에 처음 현장 나갔을 때 변두리 시골 어린이집은 너무 열악했는데 최근에는 많이 좋아졌어요. 농어촌 모든 영유아가 똑같은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비해 어린이집 환경이 개선된 것을 보면 정말 뿌듯해요. 처우만 개선된다면 많은 어려움 감수하고도 즐겁게 일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보건복지위원회 #현장관찰직 #독거노인생활관리사 #예산 증액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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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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