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중2 뒤에 '괴물' 교사가 있는 건 아닐까

[너희가 중2를 아느냐 ⑥] '좋은 선생님'이 '좋은 아이'를 기른다

등록 2014.04.11 17:44수정 2014.04.11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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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사의 구실은 무엇일까. 학생들은 어떤 교사를 '볼매(볼수록 매력 있는 사람)'로 여길까.

많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더 많은 교과 지식을 전달하고, 아이들 성적을 올리는 데 관심을 쏟는다. 교사들의 입에서는 '공부하라'는 말이 무시로 나온다. 하지만 배움과 공부로부터 멀어진 아이들에게 그 말이 귀에 들어올까. 모르긴 몰라도 옆집에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만도 못할 때가 많을 것이다.

청소년 문제 전문가들은, 학습에 관심이 없는 아이들에게는 가장 우선적으로 기본 생활 습관이나 태도에 대한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교사가 기본적인 인간관계나 삶의 태도 등을 아이들에게 잘 보여주는 게 필요한 이유다. 교과 공부는 이들 문제가 어느 정도 잡혔을 때 강조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선생님이 그렇지 않다. 공부와 성적이 중요하다는 사실에 이끌려 그것이 학생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이들이 많다. 학생은 배우기만 하면 존재인 것처럼 말한다. 학교가 무언가를 배우는 곳이니, 원칙적으로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절반만 그렇다. 문제의 교사가 말하는 배움이 교과와 관련한 내용에만 그친다면 상황이 심각해진다. 그런 교사들은 자신만의 잣대로 아이들을 가르고,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들은 부정적인 낙인을 찍는 경향이 강하다. 공부를 못하거나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은 관심권 밖에 둔다.

이들에게 가장 심각한 것은 아이들과의 소통 문제다. 소통(疏通)은 트임, 막힘 없음을 전제로 한다. '疏'라는 글자가 그렇다. 이 글자에는 '트다, 막힘이 없이 통하다' 등의 뜻이 있지만 '멀다, 친하지 않다' 등의 의미도 있다.

멀거나 친하지 않은 상대와 소통하는 데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소통에서 개방성과 유연성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는 기본이다. 이 모든 것을 위해서 소통하려는 당사자는 자신을 열거나 비워야 한다.


학교 현장을 보면, 자연스러운 소통보다 권위적인 통제를 앞세우는 교사들이 많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를 강요하고, 입으로는 소통을 말하면서도 마음의 문을 꽉 닫은 교사들이 부지기수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기준을 앞세우며 아이들을 멋대로 판단하고 평가한다.

아이들은 어느 한두 가지로만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아이들뿐이랴. 대체로 우리는 개별 인간 존재의 전모를 파악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잘 모르는 법이다.

그런데도 교사들은 아이들을 함부로 판정한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특정 무리나 조직의 아이들을 따로 특정 범주로 묶어 바라보기도 한다. 이에 따라 그 무리나 조직에 부당하고 차별적인 대우가 뒤따른다.

"정 선생님, 귀 안 가려웠어요?"

어제 오전, 다른 일로 제2교무실에 들어섰을 때였다.  박 선생님(가명)께서 불쑥 한 마디를 던지셨다.

"무슨 말씀이세요? 요새 우리 반 애들이 말썽 부려요?"
"아니 좀…, 그런데 이제 감 잡았어요. 아이들 말 안 듣는 게 어디 담임 선생님 탓인가."

내가 듣기 좋아라고 하는 말인 것 같았으나, 듣기에 따라서는 담임 때문에 아이들이 문제라는 말로도 들릴 법한 한 마디였다.

"우리 반 아이들이 힘들게 해요?"

넌지시 물어보았다.

"네, 조금. 내 바로 옆 자리 선생님도 그렇고…, 요새 정 선생님 반 수업하기 힘들다고 얘기하는 선생님이 많아요."
"그래요. 누가 그런대요?"
"영철이(가명) 어떤 아이예요?"
"영철이가 그래요? 괜찮은 녀석인데? 많이 힘들게 해요?"
"영철이가 그렇고, 석수(가명)도 그래요. 생각해 보니까 작년에 1학년 선생님들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해하겠더라고요."

'선생님은 우리 반 아이들 어떻게 대하셨는데요'

평소 아이들을 진정성 있게 대하려는 분으로 알았기에 박 선생님의 말은 내게 좀 충격으로 다가왔다. 솔직히 '선생님은 우리 반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셨는데요' 하는 말이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올라왔다.

"그래도 많이 칭찬하고 격려해 주세요. 열다섯 살짜리 아이들이니 아직 철이 없어서 그렇지요. 더 이해하고 관심 주세요."

몇 마디 말을 던지고 서둘러 교무실을 빠져 나왔다. 기분이 급격하게 나빠지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 직전에 우리 반 문제로 한 선생님과 논쟁 아닌 논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2학년 담임을 맡고 있기도 한 성 선생님(가명)이었다.

성 선생님은 대뜸 처음부터 우리 반 아이들 전체가 엉망인 것처럼 말했다. 미심쩍은 마음에 '정말 그렇냐'고 되물었다.

"전부는 아니고, 적어도 3분의 2가 그랬다니까요. 그래서 전체 벌을 좀 줬어요."

금방 '전부'에서 '3분의 2'로 줄긴 했지만 가만 놔둘 상황이 아닌 듯했다. 나는 격렬하게 반응했다. 학교가 군대냐, 문제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있으면 그 아이들만 따로 불러 이야기해야 하는 거 아니냐, 힘들더라도 차분하게 다독이면서 대해야지 애먼 얘들까지 함께 묶어 벌을 주는 게 과연 교육적이냐 하면서 따지듯 말했다.

사실 아침부터 성 선생님이 내게 말한 의도는 다른 데 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을 우선 믿고 말로 타이르는 내 '스타일'에 딴지를 걸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해서다. 성 선생님은 내가 아이들에게 야단을 치거나 혼을 내야 할 때도 감싸고 있는 것처럼 여기는 듯했다. 그는 아이들을 잡을 때 확실히 잡고, 풀어줄 때 확실히 풀어줘야 한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잡는다는 게 무슨 말인가. 권위주의적으로 윽박을 지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체벌도 줘 가면서 아이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자는 게 아닌가. 그게 과연 교육적일까. 그것이 어린 학생들을 대하는 교사가 교육자로서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일까.

그때도 나는 '성 선생님이 평소 아이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생각해 보셨어요?' 하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참 답답하다. 나는 선생님들이 우리 반 전체를, 아니면 우리 반 영철이나 석수를 특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될까 두렵다. 그런 시선이 두루 널리 퍼져 우리 반 이미지가 굳어지고, 아이들이 그로 인해 집단적으로 상처를 받는 게 걱정된다. 아이들이 교사를 불신하고, 그것이 학교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지 않을까 무섭다.

대체로 이른바 '범생' 출신인 교사들은 범생 아닌 아이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머리로는 그들의 어려운 환경과 형편, 처지를 안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려는 교사는 의외로 많지 않다. 대다수 교사들은 그저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인 아이들을 최고로 친다.

이게 올바른가. 교사는 아이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도록 늘 자신을 되돌아봐야 한다. 나만의 시선과 잣대로 아이들에게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닌지 살펴야 한다. 진정한 소통을 위해 자신의 마음을 열고 아이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좋은 선생님을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좋은 선생님 소리를 듣게 되지 않을까.

폭풍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10대 아이들에게는 우선 믿고 조용히 지켜봐 주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특정한 시선에 따라 그 아이들에게 낙인을 찍어 놓으면 아이들은 그 낙인의 이미지대로 자라나기 쉽다. 아이들이 아니라 교사가 먼저, 더 많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좋은 선생님' 아래서 '좋은 아이'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청소년 상담 전문가 중 한 명인 이창욱은 최근작 <사춘기 쇼크>(2014, 맛있는책)에서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을 네 가지로 정리해 놓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권위의식은 없지만 기본 예절만큼은 철저히 지키도록 하는 선생님을 좋아한다. 선생님에게는 교육적 권위와 최소한의 격식 유지가 필요하다. '나는 선생님이고 너는 학생이니까 이렇게 해야!'가 권위의식과 격식을 모두 내세우는 태도라면, '나는 너희들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다. 언제든지 도움을 주겠다.'는 자세는 권위의식은 없지만 격식은 갖춘 태도다. 아이들은 이렇게 격식과 예의를 강조하는 선생님을 존경한다.

또 아이들은 원칙을 어기지 않는 선생님의 태도를 좋아한다. 아이들은 사소한 약속도 반드시 지키는 선생님을 좋아한다. 못 지킬 약속을 남발하거나 계속 '예외'를 만들어 내는 선생님은 아이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다.

좋은 선생님의 세 번째 유형은 아이들에게 관심과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이다. 아이들은, 사소하고 당연한 일에 대해서라도 칭찬을 받으면 무척 좋아한다.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는 아이에게 '○○이가 하는 밝은 인사가 선생님 기분을 좋게 하는구나.' 하고 말해 주면 아이 기분도 좋아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아는 선생님을 좋아한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잘못한 일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고 입을 모은다. 어른인 교사가 먼저 사과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아이들도 잘 알기 때문이다.

삐딱하거나 배배 꼬인 아이들은 불우한 가정 환경이나 권위적인 부모 아래 있는 경우가 많다. 교사에게 대드는 간 큰 아이들도 권위주의로 똘똘 뭉친 교사들로부터 폭력적이고 모멸적인 대접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다짜고짜 무릎을 꿇리고, 머리를 내려치며, 폭언을 일삼는 선생님을 그 어떤 아이들이 좋아하고 존경하겠는가. '괴물' 중2 뒤에 '괴물' 교사가 있지나 않은지 찬찬히 돌아볼 일이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중2 #좋은 선생님 #소통 #권위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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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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