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안철수 말고,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주장] 야권 재건을 위한 세 가지 키워드, 혁신·진보·리더십

등록 2013.12.26 10:36수정 2013.12.2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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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임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열린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박근혜 신임 대통령의 취임사를 듣고 있다. ⓒ 남소연


지난 대선 때까지만 해도 대다수 사람들은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 더 독선과 불통으로 치달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보다도 더 강도 높은 권위적 통치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현상이 빚어진 원인을 사람들은 독재자를 부친으로 둔 박근혜 정부의 역사성이나 그를 둘러싼 인적 네트워크의 속성에서 구하곤 한다. 하지만 정치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힘 관계의 산물이다.

이명박 정부 이래로 지금 이 순간까지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 후퇴는 기본적으로 여-야 혹은 보수-진보간의 불균등한 권력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전에 진보의 주력인 참여정부 및 열린우리당은 잦은 실책과 내부 불협화음으로 정치기반이 총체적으로 괴멸되는 사태를 맞이해야 했다. 그 속에서 치러진 17대 대선 결과는 500만 표차가 넘는 진보진영 최악의 참패로 끝났으며, 18대 총선 결과도 한나라당 153석 대 민주당 81석이라는 엄청난 격차의 패배로 나타났다. 그 후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빈번한 국회 날치기와 노골적인 불법감시 및 사찰, 반대세력 괴롭히기는 이 같은 힘의 격차에서 비롯된 현상이었다.

18대 대선 이후 와해된 야권 핵심 지지층, 왜?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현상은 이 같은 통상적 기준만으로는 잘 해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지난 대선은 거의 일대일 구도로 치러졌으며, 그 직전 4월에 있었던 총선거에서도 국회의석 차이는 한나라당 152석 대 민주당 127석(야권 연대 140석)으로 크게 좁혀졌다. 이는 역대 정당관계에 비춰보더라도 야당이 정부와 여당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충분한 토대였다. 그런데 왜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일방적 태도를 지속하고 있고, 야당은 이를 견제하는 데서 철저히 무기력할까?

여기에는 대선 직후 야권의 핵심지지층이 급격히 흩어진 데 일차적 원인이 있다. 예를 들어 대선 전만 하더라도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정당지지율 격차는 평균적으로 6~7%P정도였지만 대선 직후에는 두 배 가량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했다(R&R 2013.1.22조사). 그 같은 현상은 경제민주화와 복지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역인 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기류에서 더욱 두드러져 나타났다.

대선 직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11월 30일 '주관적 정치이념성향' 조사를 보면 보수:중도:진보의 유권자 비중은 301:367:271이었다. 그런데 대선 후 2013년 3월 1일 조사에서는 306:247:204로, 6월 22일 조사에서는 271:281:137로 나타나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이 급격히 축소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그나마 남아 있는 진보 성향 유권자들도 이제는 민주당 지지가 아니라 무당파, 안철수, 새누리당 지지로 더욱 파편화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추세는 총선에 이은 대선에서의 잇단 패배에 따른 상실감, 열린우리당에 이어 민주당에 두 번 속았다는 배신감 등이 복합되어 어느 정도는 불가피했다. 그러나 그 추세가 너무 급격하고 속수무책의 양상으로 가게 된 데는 다른 요인이 작용했다고 봐야 한다.


먼저, 대선 직후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과 진보지식인들은 패배감과 허무감에 빠져 핵심지지층이 이탈하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고, 당연히 이를 저지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대선 후 남양유업 사태 등 경제민주화 열기가 지속적으로 분출하고 있었고 재벌의 경제민주화 반대에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가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이에 대해 야권은 제대로 된 강력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흘려보냈다. 진보적 지식인들도 패배감과 자조에 빠져 지낸 면이 많았다.

대선 후 민주당 등 야권과 지식인들은 자기혁신과 변화에서도 목소리만 높았지 제대로 된 성과물을 하나도 내지 못하고 공론만 일삼으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민주주의 이슈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대한 여권의 물타기 전략과 종북몰이에 제대로 된 대응전략도 없이 상황이 좋아지면 강하게 나가고, 상황이 안 좋으면 물러서는 모습을 반복했다.

문재인-안철수 구도의 부활이 패착인 이유

다음으로 야권의 주요 리더들이 취하고 있는 지리멸렬하고 혼란스런 행보에도 많은 책임이 있다. 먼저 문재인 의원은 지난 대선의 야권후보로서 부정선거의 피해자지만 이를 막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기도 하다. 당시 이 사건에 안이하게 대처하여 여권의 역공을 자초했고, 대선승리의 화룡정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매몰되어 자기쇄신과 변화 경쟁에 안일한 자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후 문 의원은 부정선거를 비판하는 것 못지않게 이를 막지 못한 데 대해 책임지는 행동을 보여줘야 했다. 그러나 그간 문 의원은 NLL 대화록 논란에서 나타난 것처럼 정치 현안에 대한 한풀이식의 편협한 태도로 야권 전략에 혼선을 가중시켰다. 또, 최근에는 박근혜 정부의 부정선거 은폐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선점하고 주도권을 쥐는 데 여념이 없어 보인다.

안철수 의원 또한 국가기관 선거개입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힘을 모으기보다는 기성 야당들과의 적당한 거리두기와 틈새를 이용한 세 불리기에 주력해 왔다.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도입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이를 관철하기 위한 후속행동이 전무한 것을 보면 다분히 면피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까지 했다.

이 사건은 본질적으로 민주주의 이전에 그가 말하는 상식 대 몰상식의 문제이며 국가정체성의 근간을 흔드는 헌정유린에 해당하는 문제이기에 그에게도 중요했다. 하지만 자신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대응해 왔다. 민주주의는 그렇다 치고 그의 말대로 민생이 중요하다면 민생이라도 확실히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다. 그러나 안 의원이 기초연금, 세제개편, 철도파업 등에서 제대로 대응했다고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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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2일 오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제4회 노무현 대통령 기념 학술 심포지엄 '2013년 한국 민주주의 위기 진단과 재 민주화를 위한 모색'에 참석한 문 의원이 지난해 대선 당시 자신을 지지하며 대선예비후보를 사퇴했던 안철수 의원과 악수하고 있다. 가운데는 김한길 민주당 대표. ⓒ 남소연


바로 이 같은 요인들은 국가기관에 의한 조직적 부정선거의 실체가 명백하게 밝혀지고 있음에도 야권이 정부여당의 방해 작전을 뚫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최근 흐름에서 우리를 엄습해 오는 하나의 불안은 지난 대선에서의 문재인-안철수 대결구도가 재현되는 조짐이다. 한마디로 야권내부에 파편적 경쟁갈등구조가 정착됨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커다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구도는 혁신을 지체시켜 야권에 진정한 대안이 출현하는 것을 막고, 정부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는 힘의 결집을 지속적으로 교란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야권의 핵심지지층인 진보성향 유권자들을 결집해 내기가 어렵게 된다. 문재인 의원 진영은 진보유권자에 대한 마케팅을 자기분파의 주도권 획득에 도구적으로 활용하려만 할 것이다. 또 안철수 의원 진영은 민주당보다 더 많은 진보유권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면서도 이를 자신의 협량한 중도적 틈새전략에 가둠으로써 무용지물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야권진영은 현재의 리더십 구도를 보완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민주당, 문재인, 안철수의 리더십만으로는 부족하고, '혁신'과 '진보'라는 두 개의 개념을 연결하는 새로운 구심축을 세울 필요가 있다. 새로운 리더십은 사회의 진보적 의제들을 발굴해내고 진보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제기함으로써 핵심지지층을 복원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이는 진보적 가치의 혁신과 재창조를 통해 구체화될 수 있다.

조직화된 혁신블록 부재, 야권의 최대 문제

첫째, 현재의 사회경제적 문제를 철저히 '가치 중심적'으로 분석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혼이 있는 정치'를 창조해야 한다. 둘째, 경제, 노동, 평화, 환경, 자치 등 각종 사회현장에서 대중의 삶에 깊이 뿌리박고 문제 해결의 대안을 찾는 혁신그룹과 연계하는 정치를 창조해야 한다. 셋째, 현재의 독과점 정당체제, 패권주의, 패거리정치, 하향식 정치시스템을 약화시키고 일반시민의 광범위한 참여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개방적 분권형 정치를 창조해야 한다.

지금 사람들은 이명박에서 박근혜 정부로 이어져 내려오는 권력의 배타적 독점과 획일적 지시에 입각한 독선과 불통의 리더십에 넌덜머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야권의 리더십 구도가 파편적 경쟁갈등만을 일삼으면서 응집성도 없고, 별반 대안도 제시하지 못한다면 독선과 불통을 강한 리더십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또한 여전히 많을 것이다. 그러면 사회문제 해결의 돌파구보다는 파국적 교착상태가 한 동안 지속될 것이다.

앞으로 야권이 국민들에게 희망으로 다가갈 수 있으려면 권력의 분권·공유·협력의 경쟁모델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권력의 배타적 집중과 획일성보다 궁극적으로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야권 내 세력 및 리더십 구도를 재편하고 그것의 효과적 작동과 운영을 뒷받침하는 여러 혁신적 제도들을 도입하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을 추진할 수 있는 리더십이 민주당에도, 친노에도, 안철수 진영에도 없으니 새롭게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새로운 리더십은 정치판을 움직일 수 있는 최소수단과 정치력을 갖추느냐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 그를 위한 다양한 현실적 수단들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정부 여당의 독선과 불통, 민주주의와 민생 압살에 대해 핵심을 찌르는 정확한 비판행동을 실천함으로써 여타 정치집단들을 선도해 나갈 수도 있다. 정확하고 감동적인 메시지를 생산해내어 국민들에게 귀 기울여 들어볼 만한 집단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만 해도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미국 티파티운동이 보여주는 사례처럼 민주당, 문재인, 안철수 등 주요 리더십 집단의 역관계를 이용하여 판을 움직일 수도 있다.

조직된 숫자가 얼마인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과거 무상급식 이슈나 나꼼수 현상 등에서 보듯이 세상을 바꾸는 계기는 몇몇 혁신가들의 선도적 실천으로부터 나왔다. 대중 속에 잠재해 있는 갈망을 제대로 읽어내고 올바른 방향 속에서 정확하게 뇌관을 때릴 수 있는 혁신가 집단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자면 그런 혁신가를 자임하는 사람들이 둘이든 셋이든 여기저기서 생겨나야 한다. 지금 야권의 핵심 문제는 '조직화된 혁신 블록'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고원님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초교육학부 교수입니다.
#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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