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몰위기 몰린 70대의 안타까운 죽음

하동 심재성씨 심장마비 사망... 방바닥에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 반대 노트

등록 2012.10.09 15:25수정 2012.10.0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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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성씨가 생전에 '궁항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에 반대하며 써놓은 정부를 비난하는 글 ⓒ 진주환경연합


4대강정비사업의 하나인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으로 인해 자신의 집이 수몰될 위기에 처한 70대 노인이 지난 7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장례 과정에서 저수지 사업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한 공책과 방바닥 낙서가 뒤늦게 발견돼 유가족들을 더 안타깝게 하고 있다.

경남 하동군 옥종면 '궁항저수지 둑 높이기 반대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옥종면 궁항리 오율마을에 사는 심재성(73)씨는 지난 7일 집에서 사망했다. 김봉용(57) 마을이장은 "평소 지병은 없었다. 하루 전날 같이 술을 마셨는데 다음 날 숨을 거두었다고 하니 안타깝다"며 "어르신께서는 돌아가시기 하루 전날에도 물속에 들어가는 한이 있더라도 둑 높이기 사업에 동의해줄 수 없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고 심재성씨는 부인과 이 마을에서 살아 왔으며 아들은 객지에 나가 산다. 심씨는 10여 년전 집을 새로 지었는데, 집이 저수지 바로 옆에 있다.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으로 심씨 집이 물에 잠기게 된 것이다. 궁항리 오율마을에는 29가구가 산다.

김 이장은 "어르신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 집에 가 보았더니, 방바닥에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에 반대하는 내용과 함께, '사기꾼'이라는 글을 써놓았더라"면서 "얼마나 가슴에 맺혔으면 그렇게까지 해놓았겠느냐"고 말했다.

고 심재성씨는 자신이 사용하던 공책에도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에 반대하는 내용의 글을 많이 써 놓았다. 공책에 적힌 글을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현정부 사기꾼 판치는 하동. 지금 세상 믿을 곳 없다. 바늘 도둑이 황소 도둑 된다고 했듯이 현재 수몰지구에는 사기꾼이 판치고. 수몰민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걱정. 사기꾼은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날 뛰고. 이런 공사를 현정부 법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정확한 법이 있다면, 수몰지구 마을회관에서 해법을 설명(하기) 바라며. 둑을 높이는 공사(보다) 지금 강바닥을 파면 서로가 좋을 것을. 옛날 계단식 논들이 무너지고 있는데. 이런 것을 파내면 둑 높이는 것보다 많은 물을 저장할 수 있는데."

김봉용 이장은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농어촌공사 직원들이 오면 어르신께서는 내 집에는 발도 못 댄다고 하시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심재성씨 장례식을 9일 오전 치렀으며 화장에서 마을 뒷산에 '평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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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군 옥종면 궁항리 오율마을 심재성씨가 지난 7일 자신의 집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심씨는 평소 4대강사업의 하나인 '궁항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에 반대해 왔다. 심씨 집(붉은색 원안)은 저수지와 인접해 있어 수몰 대상지에 들어간다. ⓒ 진주환경연합


이환문 진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하동과 산청지역 주민들은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에 반대해 오고 있다"면서 "심재성 어르신께서는 집회에 적극 나오시지는 않았지만 행사장에서 보았던 기억이 난다"고 전했다.

그는 "유가족과 마을 주민들의 말을 들어보면, 어르신께서는 집이 수몰되는 것과 관련해 최근 들어 매일 같이 속앓이를 하셨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술을 자주 드셨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어르신은 땅도 없는 처지로, 수몰되면 사는 게 막막하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면서 "반대 집회에 나오고 싶어도 혹시라도 그 사이에 집이 헐릴까 싶어 꼼짝을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하동 옥종면사무소 관계자는 "궁항리 주민들은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있다. 심재성 어르신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들었다"면서 "그 분의 집이 수몰 대상지에 들어가는 것으로 안다. 주도적으로 반대운동을 하시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농어촌공사 하동남해지사 관계자는 "심재정 어르신의 집이 수몰 대상지에 들어가는 것은 맞다. 그 분은 반대 주민 가운데 한 분이셨고, 극렬하게 해오시지는 않았다"면서 "집회할 때 나오시지도 않으셨고, 거동이 불편하셨던 것으로 안다. 어르신께서 돌아가신 것과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은 4대강사업의 하나로, 한국농어촌공사가 추진하고 있다. 궁항저수지 둑 높이기 사업은 최근 경상남도가 인가를 한 상태며, 농어촌공사는 사업 시행을 위한 시공측량을 하고 있다. 농어촌공사는 총 240억 원을 들여 현재의 저수지 둑보다 6.8m를 더 높인다.
#4대강정비사업 #저수지둑높이기사업 #한국농어촌공사 #진주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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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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