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며 날카롭게 싸워 공영방송 지킬 것"

'정연주 해임안' 의결된 날, 시민들 웃으며 촛불 들었다

등록 2008.08.08 23:17수정 2008.08.08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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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밤 KBS 앞에서 '공영방송 사수' 촛불 문화제를 열고 있는 시민들. ⓒ 송주민

8일 밤 KBS 앞에서 '공영방송 사수' 촛불 문화제를 열고 있는 시민들. ⓒ 송주민

 

8일 밤에도 KBS 본관 앞에는 어김없이 '촛불'이 켜졌다.

 

KBS 이사회가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안'을 강행 처리한 이날, 이상하게도 '촛불 시민'들의 표정은 밝았다. 여전히 KBS 주변은 인도까지도 배치된 전경버스로 인해 숨이 막힐 만큼 답답한 모습이었으나 시민들은 미소를 지었다.

 

200여명의 시민들은 "싸움은 웃으면서 즐겁게 해야 제 맛"이라며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하며 집회를 이어갔다. 흥겨운 노래 공연과 'MB방송장악 패러디 콩트' 등도 준비돼 웃음을 더했다.

 

물론 웃고 즐기기만 했던 자리는 아니었다. 시민들은 이명박 정부를 서슴없이 '독재정권'으로 규정했다. 군사독재정권과 다를 바 없는 '언론관'을 가진 이명박 정권의 본질이 이날 KBS 임시 이사회를 통해 명백해졌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언론 옥죄기'를 언급하는 시민들의 입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시민들은 '언론탄압·공안정국·독재정권 규탄한다'는 대형 현수막을 걸고 집회를 진행했다. 촛불을 든 손의 다른 한쪽 손에는 '방송장악 꿈 깨', '공영방송 빼앗지 마라'고 적힌 손팻말을 높이 들었다.

 

시민들은 "공영방송 사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역주행 정권'에 맞선 긴 싸움을 준비한다"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8일 밤 KBS 본관에서 벌어진 '즐겁고도 날카로웠던' 투쟁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지면에 담아봤다.

 

풀려난 최상재·성유보... "눈물 아껴뒀다 승리의 그날 기쁨의 눈물 쏟겠다"

 

이날 현장에는 지난 7일 밤 KBS 본관 앞 인도 부근에서 축구 경기를 시청하다가 느닷없이 경찰에 연행된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 성유보 방송장악·네티즌탄압 저지 범국민행동 상임운영위원장 등이 자리를 함께했다. 이날 오후 구치소에서 풀려 난 뒤, 곧바로 다시 KBS 본관 앞을 찾아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든 것이다. 

 

최상재 위원장은 "이사회 저지를 위해 더운 날씨에 힘겹게 싸웠는지 동료들 목을 보니 벌겋게 탔다"면서 "뜨거운 현장에서 함께하지 못하고, 못나게 끌려들어가 죄송스럽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계엄령 떨어진 KBS에서 국민들은 정말 가슴을 짓밟히는 모욕과 수치를 느꼈을 것"이라며 "언론인들도 오늘 이날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 될 것"이라고 성토했다.

      

"동작 경찰서에서 나와 사무실로 돌아가면서 가슴이 아프고 목이 메었지만 참겠다고 다짐했다. 이젠 죄송하다는 말도 안하고 눈물도 아끼겠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지금 만세를 부르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아직 지지 않았다. 이 싸움 꼭 이겨서 승리의 그날 기쁨의 눈물을 흘리겠다. 시민들이 우리 손을 잡아주면 우리는 꼭 이긴다. 함께해 달라."

 

22년 만에 처음으로 경찰조사를 받았다는 성유보 위원장은 "민주화를 겪으며 더 이상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함이 있었는데 그걸 어제 후회했다"며 "다른 것은 몰라도 국민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이렇게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분노와 안타까움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성 위원장은 "이명박 정권이 20년 전으로 한국 역사를 되돌리려 하지만 결코 그런 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라며 "이제 출발점이다, 다함께 어깨 나란히 해서 부둥켜 앉고 맞서 싸워나가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와대 감사하면 이 대통령 당연히 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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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밤 KBS 앞에서 촛불 문화제를 이어가고 있는 시민들 ⓒ 송주민

8일 밤 KBS 앞에서 촛불 문화제를 이어가고 있는 시민들 ⓒ 송주민

민주당 언론장악음모저지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천정배 의원도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이 KBS에 6명의 어용이사를 내세워 공영방송을 죽이고 민주주의를 능멸했다"며 "오늘 하루는 정말 분하고 억울하고 원통한 날"이라고 분개했다. 

 

천 의원은 "감사원에는 청와대에 대한 감사권도 있다, 뉴라이트 단체처럼 우리도 이 대통령과 청와대를 감사토록 감사원에 청구하자"며 "정 사장 감사결과를 유추해보면 747공약을 약속해 놓고 물가만 7% 올렸고, 광우병 쇠고기를 받아들였으며, 미친 교육에 언론민주주의를 짓밟는 행위를 일삼는 이 대통령은 당연히 해임 감"이라고 일갈했다.   

 

양승동 KBS PD연합회 회장도 "이번 이사회의 조치는 전 KBS인들을 분노케 했다"면서 성토하듯 말을 이었다. 그는 "불법적 해임 제청안 통과를 주도한 6명의 이사는 역사의 죄인"이라며 "반드시 책임을 물어 다음 주 고발조치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양 회장은 수십 일째 KBS 앞을 장악하고 있는 전경버스에 대해서 "경찰진입은 KBS 최고 경영진에서 허락해야 하는 것인데 일부 정권과 줄 댄 간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사원들이 뭉쳤으니 반드시 색출해서 경찰 버스를 밀어 내겠다"고 힘줘 말했다.

 

지난 6월 KBS 이사직에서 부당 퇴출된 신태섭 전 이사도 이날 자리를 함께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는 법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다 파괴하면서 일을 하고 있다"며 "KBS 이사회를 탈법적으로 장악하고, 검찰·감사원·국세청을 동원해 특감과 특별수사를 진행했던 전 과정이 법 위에서 법을 유린하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들은 해가 저물기만 하면 '집시법 위반'이란 이유를 들어 다 잡아가면서 막상 정부는 법 위에 군림하는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는 것. 신 이사는 "이런 식으로 칼을 뽑으면 계속 그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국민들이 힘을 모으지 않으면 우리가 쌓은 민주주의가 다 무너지는 국면"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들도 한 목소리... "국민이 공영방송 지킬 것"

 

일반 시민들도 현업을 마치고 KBS 앞을 찾았다. 이들은 이날 오전의 이사회 강행이 "불법적이고 반칙적 행위"라고 규탄하며 양초에 불을 켰다.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는 최용철(57)씨는 "내 인생에서 뿌듯한 역사를 하나 남기기 위해 이렇게 슬리퍼를 신고 현장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전경들이 오면 슬금슬금 피하던 내가 이제는 온 몸을 던져 나의 입장을 천명할 것"이라며 "언론은 공공재이기 때문에 정치적 잣대로 흔드는 행위를 하는 것은 우리가 70~80년대에 경험했듯 상당히 두려운 문제"라고 강조했다. 

 

개인택시 기사인 차승민씨는 "쉬는 날이라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현장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KBS와 MBC는 우리 국민들이 반드시 지켜낼 것"이라면서 "또한 우리는 KBS 직원들을 믿는다, 정권의 나팔수가 아닌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KBS로 국민 옆에 남을 것을 믿는다"고 거듭 당부했다. 

2008.08.08 23:17 ⓒ 2008 OhmyNews
#KBS #촛불 문화제 #공영방송 #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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