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정부는 산재 예방을 위한 자율안전보건체계를 강조하면서, 그 방법으로 노사가 자율로 시행하는 위험성평가를 들고 있다. 하지만 위험성평가가 전통적인 노사관계 외의 현장, 소규모사업장 등에서 어떻게 작동할지 세심한 준비가 없다면, 위험성평가를 강조한다고 바로 노동자 안전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위험성평가가 정말로 노동자 안전으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짚어보았다.[편집자말]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후 정부는 '산업안전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4대 전략과 14개의 핵심과제-을 발표하였다.

첫 번째 전략으로 위험성평가를 중심에 둔 자기규율예방 정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 방향은 법 제도와 행정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특히 소규모사업장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위험성평가는 2013년 한국에 도입되었다. 그런데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로벤스 위원회가 강조했던 원칙, 즉 위험을 생산하는 기업과 그 일을 하는 노동자의 참여 강화를 통한 안전보건 관리체계 확립이라는 원칙은 배제한 채, 국가 규제에 대한 부담을 형식에 불과한 '노사 자율 관리'라는 이름으로 전가했다.

영국과 유럽의 위험성평가는 도입 과정에서 다년간 여러 시행착오와 절충을 거치면서 사업장 수준에서 실제 위험을 생산하고 다루는 사업주와 노동자들이 위험을 확인하고 그 결과를 예측하여 가장 위험한 부분부터 함께 개입하고 개선하여 수용 가능한 위험수준으로 관리해왔다. 한국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이런 한계에 맞서, 노동안전보건운동은 지난한 투쟁을 벌였다. 그 성과가 사회적 재난, 산업재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성장과 함께 결합하면서, 법제도 개선에 대한 대응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결국 2020년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이 이뤄졌고, 드디어 위험성평가에 노동자 참여를 법적으로 명시하게 되었다.

하지만 2020년 민주노총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에서 실시한 위험성평가 실태조사 결과1)에서 지금까지 위험성평가를 실시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56%만이 '매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고 응답하였으며, 29.8%는 '한 번도 안 했다'거나 '잘 모르겠다'고 답하였다. 실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 48.1%가 '위험성평가 제도를 몰라서'라고 응답했고, 24.1%가 '노사 모두 위험성평가를 꼭 시행해야 하는지 몰라서'라고 답하였다.

위험성평가 사전준비 단계(안전보건 정보수집, 교육, 일정·방법 수립 등 사전준비)부터 사업결과 공유(조합원 설명회)까지 단계별로 노동조합 참여 수준을 물으니 전체적으로 절반 정도가 노동조합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사측에 의해 진행되었다고 답하였다.

한국에 도입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모든 사업에 위험성평가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민주노총 실태조사 결과와 같이 노동조합이 조직된 사업장에서도 절반 미만은 위험성평가 제도조차 모르고 있었다.

위험성평가를 한 사업장도 형식적인 평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서류 중심의 평가,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참여를 배제한 회사 중심의 평가, 현장 개선에 이르지 못하는 한계로 인해 실질적인 안전 확보는커녕 위험성평가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민주노총 사업장이 이럴진대 50인 미만 소규모사업장은 어떠할까? 심지어 중대재해의 60% 이상이 소규모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하여 소규모사업장의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수많은 유해위험요인을 수용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기 위한 효과적인 위험성평가가 시급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과제 몇 가지를 제언하고자 한다.2)
 
산재사고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규모사업장 위험성평가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산재사고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규모사업장 위험성평가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관련사진보기

 
국가의 직접 개입으로 위험성평가를 시작하자

위험을 자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비용과 자원이 필요하지만, 현재 소규모사업장은 규모가 영세하여 위험관리에 필요한 자원과 비용(시설, 장비, 적정인력, 관리인력 등)을 감당할 능력이 없거나, 감당하지 않고자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부의 자기규율 중심의 행정 방향과 그에 기반을 둔 위험성평가는 소규모사업장에는 효과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국가가 해야 할 안전관리 영역을 외부에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더이상 지금처럼 소규모사업장을 방치해선 안 되며 당장이라도 정부 차원에서 안전보건 행정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수많은 소규모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 역량 강화를 위해선 각 현장에 맞는 위험성평가를 시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국가 전체 수준의 위험성평가 실시를 비롯해, 구체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보다 직접적 개입이 필요하다.

위험성평가 대상의 우선순위를 결정하자

전체 사업장의 99%를 차지하는 소규모사업장 비중은 현재 국가 차원의 위험성평가로 진행한다고 해서 모든 개별 사업장에 대한 위험성평가와 개선 대책을 마련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사업장 규모, 취급하는 기계·기구의 종류, 사업주의 의지에 따라 안전 수준과 위험 정도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그렇기에 국가와 지자체 차원에서 집중할 업종과 지역, 공단 등을 선정하여 위험성평가 대상에 대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정해진 우선순위에 따라 개별 사업장 단위를 넘어서 지역이나 업종별로 위험성평가를 추진하면, 자원과 역량을 특정 부분에 집중할 수 있다. 물론 우선순위 결정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소규모사업장의 현실에 기반한 위험성평가가 되기 위해 필수적인 선행 과제다.

소규모사업장에 맞는 노동자 참여제도 도입

소규모사업장은 노동조합 조직율이 낮지만, 앞으로도 조직될 가능성마저 낮다. 더불어 법 제도의 한계로 50인 미만 사업장은 안전보건관리자 선임도 의무화되어있지 않기에 실제 노동안전보건 역량이 매우 부족하다.

하지만 소규모사업장은 노동자 한 명, 한 명의 이해와 공감, 참여가 현장의 안전보건 수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장 노동자가 사업장의 노동안전보건 대표자로 역할한다면 그 효과가 클 것이다. 특히 소규모사업장이 밀집된 지역, 비슷한 업종이 모인 공단의 경우, 지역과 공단 차원에서 공동의 위험성평가단을 구성하여 함께 평가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한다면, 적은 역량으로도 효과적인 활동을 만들어낼 수 있다.

여기에 노동자 중에서 업종이나 지역 공단별 안전대표자와 지역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을 선임하고 그들이 함께 정기적으로 현장점검을 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이때, 관건은 활동을 위한 시간과 비용을 지원하고 지역 명예산업안전감독관과 안전대표자에게 현장 출입과 역할에 대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노동자 참여가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지 않도록, 소규모사업장에 적합한 형태의 노동자 참여 제도를 시행하고 국가와 지자체 차원의 지원을 통해 이를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직접 지원사업의 규모를 확대하고 전략적으로 지원하자

최근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전면 적용을 유예하는 대신 1조 2천억 원의 산재예방 예산을 투여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이미 2021년부터 투입하고 있는 산재 예방 예산과 큰 차이가 없다. 심지어 그 예산 중 40% 이상이 재해예방시설자금 융자사업이다.

지난해 개별실적요율제에 따라 산재보험료를 할인받은 사업장은 55,032곳, 인하액은 총 7,502억 4,400만 원이며, 산재보험료 할인액은 지난 4년여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더군다나 1천명 이상(건설업 외) 기업 753곳과 공사금액 2천억 원 이상의 건설기업 125곳에서 총 3,416억원을 감면받았다.

대기업의 산재보험료 할인액을 줄이고 융자사업을 직접 사업예산으로 전환한다면, 소규모사업장의 산재예방 직접사업 예산은 지금보다 2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 증가한 예산으로 위험성 평가 우선순위에 해당하는 업종과 지역, 현장을 진단하고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전략적 지원 사업을 시행할 수 있다.

안전을 위한 정보를 공공의 자산으로 삼자

안전보건공단 클린사업장 지원사업, 근로자건강센터의 작업환경컨설팅 사업 등 소규모사업장의 작업환경 개선작업에 대한 정보가 공공의 자산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지금의 법 제도에서는 위험성 감소 및 개선조치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데이터화하는 것은 공공의 영역, 예를 들어 공공기관이나 지자체 경우에서만 겨우 가능하다.

사업장의 안전보건을 위한 정보가 공공의 자산이 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법 제도적 보완을 해야 훨씬 더 방대한 데이터 수집이 가능할 수 있다. 사업장에서 수행하는 다양한 안전보건 정보 중에서 불가피한 부분을 제외하고 최대한 공개한다면, 소규모사업장뿐만 아니라 전체 사업장에서도 작업환경 개선과 안전보건 수준 향상을 위한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이외에도 소규모사업장의 안전수준을 높이고 실질적인 위험성평가를 위해서 해야 할 과제가 많다. 하지만 수십 년째 OECD 최고 수준의 산재사고 사망률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고, 2018년부터 산재사고사망율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정부 목표의 실현은 여전히 요원하다. 산재 사망사고의 80%가 소규모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잔인한 노동 현실에서 지금 국가가 할 역할이 무엇인지 제대로 유념해야 한다.

1) 민주노총 총서 2020-08 「위험성평가 실태조사 및 활성화 방안연구」 : 위험성평가 실태조사에 참여한 대상은 민주노총 산하 5개 산별연맹(공공.금속.보건.서비스.화섬)이며, 참여 사업장은 공공은 24개, 금속은 67개, 보건은 27개, 서비스는 32개, 화섬은 41개 사업장이다.
2)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당장멈춰 기획팀에서 '소규모사업장 안전 수준을 높이기 위한 정책제언'을 준비 중이다. 제언 내용은 현재 준비 중인 정책 제언 일부를 정리한 내용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숙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5월호에도 실립니다.


태그:#소규모사업장, #위험성평가, #산업재해
댓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는 모든 노동자의 건강하게 일할 권리와 안녕한 삶을 쟁취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