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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에서는 올해 7월 28일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 하지만 벌써부터 서구 주류 언론은 니콜라스 마두로의 3선 연임 도전을 강조하거나 야당 후보 탄압이라는 헤드라인으로 비민주적 선거라는 프레임으로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류 언론은 현재 25년째  진행되고 있는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혁명에 대해서는 보도하지 않는다. 1998년 우고 차베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가장 먼저 한 것은 의회를 해산하고 제헌의회를 소집한 것이다. 제헌의회를 통해 1999년 개정된 헌법은 국민투표에서 71% 찬성을 받아 베네수엘라 볼리바리안 공화국 헌법이 된다. 그리고 새로운 헌법에 의거해 다시 선거를 치러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2013년 서거 전까지 자본주의 논리를 극복하기 위한 볼리바리안 혁명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 혁명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이어 받아 진행 중이다. 

볼리바라인 혁명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는 민중에게 권력을 부여하고, 소수의 엘리트 정치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대의민주주의가 아닌 민중이 직접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토론하고 결정하며 집행하는 과정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공동체평의회이며 공동체평의회가 모인 코뮌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2006년 주민이 공동체평의회를 구성하고 직접 각 지역에 필요한 주거, 의료, 교육에 대한 문제를 토론하고, 국가와 공동체의 자원을 활용해 해결하도록 했다. 이러한 공동체평의회는 도시의 경우 약 200-400가구, 농촌의 경우에는 20-50가구로 구성된다. 이후 2010년에는 코뮌 기본법을 제정해 공동체평의회가 모인 코뮌을 구성하고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고 관리할 권한이 있는 공동체의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각 공동체평의회에서는 대변인을 선출하며, 대변인은 코뮌에서 자신의 공동체를 대변한다. 만약 공동체의 뜻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 경우 주민은 대변인을 소환할 수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약 4만5000개의 공동체평의회와 3000개의 코뮌이 등록되어있다고 한다. 올해 3월 초부터 4월 21일까지 베네수엘라는 더 많은 주민들이 직접 민주주의 과정에 참여하며 주체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전국 파퓰러 컨설테이션(National Popular Consultation)을 진행했다. 파퓰러 컨설테이션은 '국민투표'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선택지가 이미 주어지는 국민투표와는 달리 파퓰러 컨설테이션은 선택지부터 국민이 직접 만든다는 차이가 있다.  

파퓰러 컨설테이션의 과정은 총 4가지 단계로 진행되었다. 첫번째 단계(3/7~10일)에서는 전국 단위, 주 단위, 지방자치 단위, 그리고 각 공동체 단위로 집행위를 구성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에 대한 지원을 요구했다. 두번째 단계(3/9-18일)에서는 각 지역에서 총회를 열어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을 논의하고 결정했다. 세번째 단계(3/19-4/20)에서는 선거와 실무팀이 조직되었고 지역 내에서 선거를 알리는 활동을 했다. 마지막으로 4월 21일에는 이 과정을 통해 상정된 6~7개의 사업 중 주민이 직접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사업을 선택하는 날이었다. 

전국적으로 필요한 사업을 논의 하기 위해 2만8305개의 공동체평의회가 총회를 열였고, 23만2116명의 주민이 참여했다. 그 결과 2만7156개의 사업이 후보로 올랐고, 전국 4500 곳에서 투표가 실시되었다. 주민이 선택한 사업을 집행하는 데 드는 비용은 정부가 전액 지원한다. 이를 위해 약 6000억 원이 책정되었다. 투표가 끝나고 나면 선정된 사업에 대한 계획과 예산 집행 과정은 모두 주민의 직접 참여로 진행된다.  

필자는 국제옵저버단의 일원으로 4월 21일 실시되는 파퓰러 컨설테이션의 투표 날 베네수엘라의 아라구아주의 4개 투표소를 방문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투표 과정을 볼 수 있었다. 

민주주의를 참되게 실현하다
 
후안 호세 수가라무르히 코뮌의 대변인들과 주민들이 국제옵저버단에게 투표과정과 코뮌 활동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후안 호세 수가라무르히 코뮌의 대변인들과 주민들이 국제옵저버단에게 투표과정과 코뮌 활동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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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로 방문했던 후안 호세 수가라무르히 코뮌의 주민들이 국제 옵저버단을 맞이해 주었다. 코뮌에서 활동하는 대변인들이 지역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투표과정뿐만 아니라 코뮌 활동으로 만들어왔던 성과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공동체 라디오 설립이나 공공서비스위원회의 마을 환경정화 활동 등이 있었다. 공동체평의회에서 선출해서 코뮌에서 활동하는 대변인의 80%가 여성이라고 한다. 
 
후안 호세 수가라무르히 코뮌에서 파퓰러 컨설테이션 기간에 지역의 문제, 강점, 해결책을 토론한 결과를 적은 대자보. 투표소 벽에 붙어 있었다.
 후안 호세 수가라무르히 코뮌에서 파퓰러 컨설테이션 기간에 지역의 문제, 강점, 해결책을 토론한 결과를 적은 대자보. 투표소 벽에 붙어 있었다.
ⓒ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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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소는 보통 지역의 학교나 커뮤니티 센터에 설치되었다. 투표소에는 각 지역에서 토론의 진행과정과 내용을 보여주는 대자보가 붙어있다. 사진의 맨 왼쪽에는 지역의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한 내용이 있다. 주거, 의료, 상하수도와 관련된 문제 등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하며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위주로 토론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운데 부분에는 문제 해결에 있어서 지역이 가진 강점에 대한 내용이다. 맨 오른쪽에는 해결책으로 제안된 내용이 있다. 
 
후안 호세 수가라무르히 코뮌에서 투표 선택지와 주민의 투표과정
 후안 호세 수가라무르히 코뮌에서 투표 선택지와 주민의 투표과정
ⓒ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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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에서 토론 과정을 거쳐 총 7개의 사업 후보(1번 사진)가 결정되었고, 이 7개의 사업이 투표의 선택지가 된다. 투표에 필요한 모든 물품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지원해주지만, 투표의 전 과정은 주민이 직접 운영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파견된 직원은 각 투표소를 돌며 투표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지원해야할 것은 없는지를 체크한다고 한다. 

투표 과정은 보통의 선거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투표를 하러 온 주민은 신분증을 제시하고 본인임을 확인한다(2번). 투표 용지에는 7개의 사업 중에 지역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업의 번호를 적는다(3번). 기표소에서 투표를 하고(4번), 투표함에 투표 용지를 넣는다(5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투표 확인을 하고 신분증을 돌려받는다. 처음에 본인 확인했던 인원과 마지막 투표 확인, 그리고 투표함 속의 투표 용지의 수가 일치해야 한다. 베네수엘라는 대선, 총선, 지방선거의 법정 투표 가능 연령은 18세이다. 하지만 이번 투표에서는 15세 이상의 주민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푼도 코로포 코뮌과 이호스 데 차베스 엔 빅토리아 코뮌에서 제작한 마을지도와 마을 정보
 푼도 코로포 코뮌과 이호스 데 차베스 엔 빅토리아 코뮌에서 제작한 마을지도와 마을 정보
ⓒ 황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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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소를 방문했을 때 공동체평의회와 코뮌의 활동을 통해 주민이 지역을 얼마나 잘 알게 되며 어떻게 공동체를 일궈가는지를 볼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1번 사진은 세번째로 방문했던 푼도 코로포 코뮌에서 지역의 지도를 직접 제작한 것이다. 각 투표소를 방문했을 때 이런 마을 모형지도를 볼 수 있었다.

2번 사진은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이호스 데 차베스 엔 빅토리아 코뮌에서 제작한 대자보이다. 이런 지도는 주민들이 실제 지역을 발로 뛰어 취합된 정보를 기반으로 작성한다. 도로와 집의 수, 가구원수와 총 주민의 수, 공동체평의회 내의 위원회 수 등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주민이 집집마다 방문해 확인한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확한 정보의 취합이 될뿐만 아니라 주민 간의 소통이 늘어나고, 지역의 문제를 주민으로부터 직접 들어 파악할 수 있으며, 공동체평의회의 참여를 독려할 수 있게 된다. 이번 파퓰러 컨설테이션의 과정에서도 집집마다 방문하며 참여를 독려하고 선거에 대해 알리는 활동이 있었다고 한다.

올해 4월 총선을 치른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마땅한 선택지가 없다는 말을 했다.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을 선택하거나, 거대 양당 후보라는 선택지밖에 없어 둘 중 하나를 어쩔 수 없이 선택하거나, 아예 기권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베네수엘라 파퓰러 컨설테이션의 투표 과정 자체는 흔히 볼 수 있는 투표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투표 선택지를 직접 만드는 주민의 토론과 결정 과정, 투표 참가, 투표 이후 선정된 사업을 직접 집행하는 과정까지를 고려하면 매우 다르다. 단 하루만 투표장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일상에서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베네수엘라의 민주주의. 민이 주인되는 민주주의라는 정의를 참되게 실현하고 있는 것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국제전략센터 웹사이트(www.goisc.org)에도 게시되었습니다.


태그:#베네수엘라, #파퓰러컨설테이션, #코뮌, #선거, #국제전략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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