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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아침에는 현관 밖으로 감히 나서지 못했다. 바람은 차고 사방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다. 따뜻한 거실에서도 아름다운 모습은 볼 수 있으니 굳이 찬 바람 부는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봄이 오니 정원의 꽃들이 손짓한다. 어제와 달라진 자기의 예쁜 모습을 보러 오라고.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열고 나간다.

아름다운 소리가 들린다. 그동안 잠시 잊고 있었던 새의 지저귐이다. 겨우내 닫혔던 귀가 열린 것이다. 새 소리는 마음을 맑게 한다. 이렇게 하루를 기분 좋게 연다.

이른 봄에 이런 일이 있었다. 새 한 마리가 날아와 거실 창에 부딪혀 기절했다. 얼른 보듬어 햇살이 잘 드는 곳에 두고 물 한 모금 떠 놓았다. 한참을 지켜보아도 움직임이 없다. 어떡하지? 걱정이 밀려온다. 잠시 한눈파는 사이에 새가 사라졌다. 아, 안심. 더불어 기분이 너무 좋았던 적이 있었다.

마음을 씻어주기도 하고, 기분 좋게 하루를 열어주는 새 소리, 나는 그 새들의 이름을 모른다. 참새, 제비, 까치, 까마귀, 비둘기, 뻐꾸기 정도이다. 새 이름과 새 모습과 새 소리가 하나로 연결되는 새는 훨씬 적다. 뻐꾸기 소리는 알아도 그 모습은 본 적 없다. 도시에 살 때, 뻐꾸기 소리를 듣고 싶어 앞산(황령산)을 오를 때도 있었다. '뻐꾹, 뻐꾹' 우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지러웠던 마음이 평온해졌다.

지난해 늦봄, 정원을 만들기 위해 잔디를 걷어내는 일로 지쳐있을 때 앞산, 뒷산에서 아름다운 새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듣는 소리지만 너무 아름다운 소리였다. 순간 피로가 싹 가시며 한 번 더 그 소리를 듣고 싶어 귀를 쫑긋 세운 적이 있다. 마치 나를 무릉도원으로 부르는 것 같았다. 잠시 쉬면서 그 소리를 한동안 들었다. 일을 마치고 그 새 소리를 찾아보니 휘파람새 소리인 것을 알았다. 올해는 언제쯤, 이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아침마다 현관 데크로 날아오는 새, 앞산에서 지저귀는 새, 그 이름을 모른다. 이들은 나의 귀를 즐겁게 해주고, 마음의 평온을 주는데 나는 그들의 이름조차 모른다. 지금까지 공부한 것은 헛공부였다. 새 소리와 새의 모습을 찾아본다. 아침마다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새는 곤줄박이와 박새이다. 나무에도 앉았다, 데크에 앉았다가 하며 종종대는 모습이 참 이쁘다. 그런데 제발 창에는 부딪히지 말기를. 그 마음으로 데크에 큰 파라솔을 놓아두었다.

꽃을 공부하다 보면 이름이 외래어로 된 것이 많아 힘든데 다행히 새 이름은 우리말로 된 것이 많아 익히기 편하다. 딱새, 딱따구리, 파랑새, 부엉이, 오목눈이, 직박구리 등등. 수선화를 나르키소스(narcissus), 데포딜(daffodi)이라 부르지 않아서 좋다. 클레마티스(clematis)를 으아리라고 불렀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초등학교에서 꽃 이름, 나무 이름, 새 이름, 물고기 이름을 마을로, 뒷동산으로 다니면서 알뜰히 가르치면 좋겠다. 자연을 배우는 재미를, 그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살아가면 행복하지 않을까?

4월로 접어드니 마당에는 꽃 잔치가 한창이다. 봄이 왔음을 알려주었던 생강나무꽃, 진달래꽃, 할미꽃, 목련, 앵두꽃이 내년을 기약할 무렵 금낭화, 무스카리, 제비꽃, 튤립, 서부해당화, 미산딸나무, 꽃잔디, 라일락, 매발톱 등등이 얼굴을 쏙쏙 내민다. 정원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봄을 이렇게 온몸으로 맞이하고 즐긴 적이 있었던가?

정원의 꽃을 감상하다 무스카리, 제비꽃에 눈길이 머문다. 정원을 정리하다 보면 호미와 삽 끝에 딸려 오는 조그마한 풀, 마치 달래와 같다. 나는 그때까지 이 꽃이 무스카리인 줄 몰랐다. 이것을 잡초 취급하여 뽑아 버리려 했다. 내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가 무스카리라 알려주면서 버리지 말고 자기에게 달라고 한다. 그리고 나무 밑에 하나하나 자리를 만들어 준다. 일을 빨리 마치고 싶은 마음에 그러면 언제 일을 다 끝내느냐고 아내에게 짜증을 내보기도 하지만 아내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 그 무스카리가 나에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나를 버리지 않길 잘했지? 작지만 밝은 보라색 송이로 곧바르게 자기를 드러내는 모습이 품격 있다. 
   
라일락 나무 아래서 작지만 밝은 보라색 송이로 곧바르게 자기를 드러내는 모습이 품격 있어 좋다.
▲ 무스카리 라일락 나무 아래서 작지만 밝은 보라색 송이로 곧바르게 자기를 드러내는 모습이 품격 있어 좋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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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여기저기 곳곳에서 제비꽃이 '나 귀엽지' 하면서 자기 존재를 보여주고 있다. 제비꽃의 생명력, 귀엽지만 감당하기 버거워 정원 안으로 데려와 자리를 만들어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돌 틈에서, 다른 꽃 옆에서 자기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아내는 '이들에도 한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하나'라고 하면서 고민하고 있다.

아내가 석축 아래로 퍼져나간 잔디를 정리하다가 처음 보는 버섯을 보고 '뭐지' 하고 놀란다. 며칠 전에 내가 우연히 알게 된 '곰보버섯'이다. 식용할 수 있는 버섯이다. 철분을 함유하고 있어 빈혈에, 피로 해소에 좋다고 한다. 몰랐다면 독버섯이라 여기며 바로 뽑아버렸을 텐데. 왜 두 송이밖에 없지? 더 없나 하며 주위를 살펴본다.
  
석축 위를 정리하다 발견한 곰보버섯. 식용버섯으로 철분을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 곰보버섯 석축 위를 정리하다 발견한 곰보버섯. 식용버섯으로 철분을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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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가꾸기는 잡초와의 전쟁이라는 말을 들었다. 4월 중순이 지나니 잡초가 보인다. 보이는 즉시 뽑아야 고생이 적고 감당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잡초,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나서 자라는 풀', '농작물 따위의 다른 식물이 자라는데 해가 되기도 한다'라고 표준국어대사전에 뜻매김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뜻매김보다 나는 애머슨의 뜻매김을 따른다. '아직 그 가치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풀'. 황대권의 <야생초의 편지>를 읽다 알게 된 구절이다.

우리 집 석축을 지금 가장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꽃이 꽃잔디이다. 그런데 이 꽃잔디가 철쭉, 영산홍, 회양목의 성장을 심하게 방해하고 있다. 그렇다고 꽃잔디를 뽑아 버리지는 않는다. 다만, 조금 뜯어내어 다른 곳으로 조심스레 옮겨줄 뿐이다.
  
꽃잔디가 철쭉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
▲ 꽃잔디와 철쭉 꽃잔디가 철쭉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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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우리 마당에는 내가 심지도 가꾸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자라는 꽃도 많다. 금계국, 벌개미취, 붓꽃, 산국, 샤스타데이지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꽃들이 많이 있다. 금계국을 몰랐을 때 나는 뽑으려 했다. 그때 아내가 그 꽃이 금계국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지금은 그대로 피어날 수 있도록 뽑지 않고 있다. 내가 그 이름을 알고 또한 그 꽃의 가치를 알기 때문이다. 선명한 노란 꽃을 보며 무더운 여름을 잠시 잊을 것이다.
 
배수로를 정리하다 발견한 금계국.몰랐다면 잡초 취급하여 봅아버렸다.
▲ 금계국 배수로를 정리하다 발견한 금계국.몰랐다면 잡초 취급하여 봅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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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에서 정원을 가꾸면서 쇠뜨기 때문에 정말 힘들다고 한다. 뿌리가 너무 깊이 박혀 있고 곳곳에 피어나 어찌할 수가 없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완전히 없앨 수 있을까 찾아보았다. 그런데 차와 나물, 효소로 먹으면 건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어떡하지? 뽑아야 하나? 쇠비름도 마찬가지이다.

쇠뜨기, 쇠비름은 그래도 이름이나마 알지만 이름도 모르는 그리고 내가 원하지 않았던, 내가 심지 않았던 곳에 있는 풀을 마구잡이로 뽑아야 하나? 그러면 정원은 아름다워질까? 무식한 용감을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하나? 나중에 그 가치를 알고 아쉬워하지 않을까? 정원을 거닐면서 오늘도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태그:#시골살이, #새이름, #꽃이름, #잡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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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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