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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싸는 막내의 모습. 야무지게 말아서 한 입에 쏙 넣고는 엄지척을 한다.
 김밥싸는 막내의 모습. 야무지게 말아서 한 입에 쏙 넣고는 엄지척을 한다.
ⓒ 문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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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즐겨 먹는 식재료는 당근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는지 이름도 생소한 '당근라페 다이어트'를 자꾸 보여준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생당근이다. 대학생 때 주점에 가서 소주를 시키면 당근이랑 오이가 밑반찬으로 나왔다. 나는 늘 메인 안주보다 당근을 더 많이 먹었다. 

마트에서 흙당근을 샀다. 세척용보다 흙당근이 싱싱해 보여서 항상 흙당근을 산다. 잘 고른 당근 7개를 비닐에 담는다. 과자 세 개 값도 안 한다. 당근을 심고 수확했을 농부들의 땀을 생각하면 속상할 일이다. 

당근을 씻어서 먹기 좋게 자르고 반찬통에 넣는다. 그리고 생각날 때마다 먹는다. 요즘은 양배추와 사과, 당근을 채 썰어서 그릭 요구르트를 붓고 저녁 대신 먹고 있다. 먹을 거 다 먹으면서 날씬하길 바라면 욕심이다. 문제는 이렇게 잘 먹다가 한번 '입이 터지면' 그 뒤를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한반복이다. 

당근을 먹기 싫어하는 아이들

우리 집 세 남매는 당근을 안 먹는다. 안 먹는 정도가 아니라 싫어한다. 특히 막둥이가 질색팔색이다. 파프리카와 오이는 잘 먹는데 왜 유독 당근을 안 먹는지 모르겠다. 카레에 넣은 당근도, 볶음밥에 잘게 썰어 넣은 당근도 일일이 골라내서 먹는다. 

그렇지만 내가 누군가. 나는 엄마다. 아이 몸에 좋은 당근을 꼭 먹이고 싶다. 하지만 당근을 싫어하는 막둥이의 취향도 존중한다. 조금은 돌아갈 필요가 있었다. 막둥이는 김밥을 좋아한다. 김밥 종류 중에 꼬마김밥이 있다. 꼬마김밥에는 단무지와 당근만 있으면 된다. 

아침에 밥을 하고, 당근을 채 썰어 올리브유에 볶았다. 단무지도 얇게 채 썰고 준비했다. 밥통에서 금방 한 밥을 덜어 양푼에 넣는다. 참기름을 한 바퀴 두르고 소금과 깨를 솔솔 뿌렸다. 부엌에 고소한 냄새가 퍼진다.

우리 집 막둥이, 초등학교 3학년 아이가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온다. 

"엄마, 오늘 아침은 뭐예요?" 
"응, 오늘은 김밥." 
"와, 나 김밥 좋아하는데." 


막둥이가 양념된 밥을 저어보겠다며 팔을 걷어붙인다. 양푼을 무심하게 내미니, 밥을 저으며 한 번씩 맛을 본다.

"그런데 왜 햄이랑 계란이 없어요?" 
"오늘은 꼬마김밥을 만들 거야." 
"와, 나 햄 들어간 김밥 싫어하는데. 잘 됐다." 


막둥이는 햄이 안 들어갔다는 것에만 신경 쓰느라, 당근이 산더미 같다는 것은 미처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엄마, 저도 만들어도 돼요?" 
"'당근'입니다." 


이제 다 넘어왔다. 손끝이 야무지고 의욕이 넘치는 막둥이가 비닐장갑을 끼더니 밥을 담고 김밥 끝에 밥풀을 붙여가며 김밥을 말았다. 

김밥은 언제 제일 맛있을까? 나는 김밥을 썰며 먹는 소위 '꼬다리'가 제일 맛있다. 우리 막둥이도 그걸 알고 있나 보다.

김밥을 싸다 말고 갑자기 먹기 시작한다. 당근이 듬뿍 들어간 꼬마김밥을 맛있다며 먹고 있다. 집 김밥은 한번 먹으면 멈출 수 없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렇다. 막둥이도 그런가 보다. 계속 먹는다. 

그런 막둥이를 보며 키득거렸다. 당근만 보면 온갖 인상을 쓰던 아이가 맞나 싶어서. 막둥이는 얼마나 먹었는지도 모르게 꼬마김밥을 많이 먹었다. '맛있다'는 말과 다음에도 또 만들자는 말을 남겼다. 내겐 최고의 후기다. 

다음에는 당근으로 뭘 만들까? 즐거운 고민이다.

태그:#제주당근, #꼬마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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