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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예상 벗어난 '엄마의 폭주', 봉준호는 이걸 꿈꿨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봉준호 감독의 걸작 <마더>

24.05.10 10:30최종업데이트24.05.1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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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반장>의 박영한 반장, <전원일기>의 김 회장으로 유명한 최불암 배우는 한국 방송가에 한 획을 그은 연기자다. 실제로 1970~1980년대 한국 드라마는 최불암이라는 배우를 제외하면 설명이 힘들 정도로 그 존재감이 대단했다. 1990년대 초반에는 그의 이름을 딴 개그 시리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2011년부터는 대한민국 곳곳에 있는 향토 음식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하는 푸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최불암 배우는 대한민국 드라마 역사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했던 배우지만 상대적으로 영화에서의 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1970년대까지 드라마와 영화활동을 병행하던 최불암 배우는 <수사반장>과 <전원일기>가 인기리에 방송되던 1980년대부터 영화출연을 크게 줄였다. 지난 2004년 <순풍산부인과>로 유명한 오지명 배우가 연출한 <까불지마>가 현재까지 최불암 배우의 마지막 영화 주연작이다.

<전원일기>를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최불암 배우와 부부연기를 하면서 실제 부부로 오해를 받기도 했던 김혜자 배우 역시 영화보다는 드라마 활동에 더 익숙한 대표적인 배우 중 한 명이다. 하지만 김혜자 배우에게는 지난 2009년에 개봉해 엄청난 열연으로 관객들을 놀라게 했던 영화가 있었다. 60대 후반의 나이에 국내외 11개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휩쓸었던 봉준호 감독의 4번째 장편영화 <마더>였다.
 

<마더>는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극장개봉영화' 중에서 두 번째로 낮은 흥행성적을 기록했다. ⓒ CJ ENM

 
인자한 '국민엄마'의 섬뜩한 연기변신

1960년 대학에 입학한 김혜자 배우는 1961년 KBS 1기 공채탤런트로 합격하며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결혼과 함께 학교를 중퇴했다. 결혼 후 평범한 주부로 살던 김혜자 배우는 연기에 대한 갈증을 느끼다가 20대 후반의 나이에 연극배우로 활동을 재개했고 1969년 TV방송국을 개국한 MBC에 스카우트되면서 TV활동을 이어갔다. 2000년대 초반까지 김혜자 배우의 커리어에 MBC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다.

<개구리 남편>과 <신부일기> <당신> 등에 출연하던 김혜자 배우는 1975년부터 C사의 전속모델로 발탁돼 2002년까지 무려 27년간 활동했다. 특히 "그래, 이 맛이야"라는 C사 조미료의 광고카피는 김혜자 배우의 높은 인지도와 함께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전원일기>를 통해 '국민엄마'의 이미지를 얻은 김혜자 배우는 1992년 <사랑이 뭐길래>에서 가부장적인 남편 옆에서 기죽어 사는 아내 순자 역을 맡으며 MBC 연기대상을 수상했다.

김혜자 배우는 높은 인지도에 비해 영화에서의 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않았다. 데뷔 초였던 1969년 <눈물의 여인>에 출연한 김혜자 배우는 1982년 김수용 감독의 <만추>에서 특별휴가를 받은 모범수 혜림을 연기해 마닐라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만추> 이후 다시 10년 넘게 영화 출연이 없었던 김혜자 배우는 1999년 윤인호 감독의 <마요네즈>에서 고 최진실과 모녀연기를 선보였다.

<마요네즈> 이후 다시 드라마 활동에 전념하던 김혜자 배우는 2008년 <엄마가 뿔났다>를 통해 KBS 연기대상 대상과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9년 김혜자 배우는 자신의 커리어 4번째 영화였던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 출연했다. <마더>에서 여고생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린 아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머니를 연기한 김혜자 배우는 LA영화 비평가협회상을 포함해 11개 영화제의 연기상을 휩쓸었다.

하지만 김혜자 배우는 2014년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제외하면 영화출연을 자제하고 있다. 대신 2016년 <디어 마이 프렌즈>와 2019년 <눈이 부시게> 등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하며 발군의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백상예술대상 TV부문대상을 4번이나 수상했을 정도로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이 시대 최고의 연기자 김혜자 배우는 지난 2022년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이병헌과 모자연기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일그러진 모성
 

김혜자 배우는 <마더>를 통해 국내외 11개 영화제의 연기상을 휩쓸었다. ⓒ CJ ENM

 
봉준호 감독이 학창시절에 한강다리 교각을 타고 올라가는 물체를 보고 영화 <괴물>의 영감을 얻은 것처럼 영화 <마더>는 1995년에 방영된 MBC 드라마 <여>에서 출발했다. 김혜자 배우는 <여>에서 자식을 가질 수 없어 유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민숙 역을 맡아 자식에 대한 집착과 사랑이 뒤섞인 복잡한 캐릭터를 소화했다. 이를 감명 깊게 본 봉준호 감독은 김혜자 배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구상했고 14년 후 <마더>가 탄생했다.

사실 <마더>는 <플란다스의 개>를 시작으로 <살인의 추억> <괴물>을 거치면서 점점 대중의 취향을 읽는 능력을 갖추던 봉준호 감독의 다른 영화들과 비교하면 다소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 작품이다. 실제로 2009년 5월에 개봉한 <마더>는 전국 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어느 정도 흥행에 성공했지만 이는 넷플릭스 영화 <옥자>를 제외하면 봉준호 감독의 커리어에서 두 번째로 낮은 흥행성적이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사실 '국민엄마' 김혜자 배우와 '꽃미남' 원빈이 모자관계로 나오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때만 해도 <마더>가 <말아톤>을 연상케 하는 감동 드라마가 될 거라 예상한 관객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마더>의 이야기 진행은 <말아톤>보다는 오히려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스릴러에 가깝다. <마더>는 어머니라는 존재가 자식을 위해 어디까지 폭주할 수 있는지 보여준 영화였다.

<마더>는 미국의 영화평론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96%, 관객점수 89%를 받았을 정도로 해외관객들과 언론에서 평가가 유난히 좋았다. 프랑스의 영화잡지 카예 뒤 시네마는 <마더>를 2009년에 개봉한 영화들 중 10위로 선정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를 연출한 제임스 건 감독은 지난 2015년 인터뷰에서 <마더>를 "지난 5년간 가장 좋았던 영화"로 꼽았고 봉준호 감독의 전작 <살인의 추억>과 <괴물>을 함께 추천했다.

엔딩 장면에서 나오는 관광버스 춤판은 봉준호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으로 봉준호 감독과 홍경표 촬영 감독이 긴 상의 끝에 힘들게 찍은 장면이다. 이는 영화 속 마더가 특별한 인물이 아닌 지극히 평범한 우리들의 '마더' 중 한 명임을 상징하며 자식을 위해 처절하게 살아가는 '마더'들의 삶을 응축한 장면이다. '마더'들의 흥겨운 춤판이 어느 순간 용광로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인다면 봉 감독의 숨은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 것이다.

도준 엄마와 비밀을 공유한 도준의 친구
 

진구는 혜자와 묘한 비밀을 가진 듯한 도준의 친구 진태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 CJ ENM

 
최전방 GOP 초소에서 군생활을 하다가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하면서 의가사 제대한 원빈에게 <마더>는 복귀 후 첫 작품이었는데 하필이면 복귀작에서 맡은 역할이 지능이 다소 모자란 캐릭터였다(물론 도준은 영화 중간중간 뛰어난 기억력을 발휘하며 엄마와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봉준호 감독은 1년 후 원빈의 차기작 <아저씨>를 본 후 "이렇게 멋진 배우를 바보로 만들어 미안했다"며 원빈에게 정식으로 사과의 말을 전했다.

영화 <비열한 거리>와 < 26년 > <마녀2>, 드라마 <태양의 후예> 등에서 다양한 매력을 보여준 배우 진구는 <마더>에서 도준의 친구 진태를 연기했다. 혜자는 영화 초반 불량배인 진태를 범인으로 몰아가는데 범행도구인 골프채에 묻은 붉은 자국이 여자친구의 립스틱 자국임이 밝혀지며 풀려난다. 진태는 그날 밤 혜자의 집에 찾아가 분노를 표출하는데 이 장면에서 혜자와 진태가 '아들 친구와 친구 엄마' 이상의 관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괴물>에서 노숙자를 연기했던 윤제문과 <살인의 추억>에서 박두만 형사의 애인 곽설영 역을 맡았던 고 전미선은 <마더>에서 도준을 잡아가는 형사와 동네 사진관 사장으로 출연했다. 두 배우 모두 자신의 본명과 영화 속 배역명이 동일했다. 특히 전미선은 <살인의 추억>에서 불법으로 동네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간호사를 연기한 적이 있는데 <마더>에서는 반대로 불법으로 침을 놓는 혜자에게 치료를 받는다.

<마더>에는 훗날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스타배우들이 단역으로 출연했다. 개성 있는 사투리 연기로 2010년대 초반 많은 영화에 출연했던 송새벽은 도준을 위협하는 세팍타크로 형사 역으로 출연했다. 영화 <써니>와 <한공주> <곡성>, 드라마 <멜로가 체질> <이로운 사기>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천우희는 진태의 애인 미나를 연기했다. 이 밖에 이정은과 곽도원도 비중이 크지 않은 조·단역으로 <마더>에 짧게 등장했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마더 봉준호감독 김혜자 원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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