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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아냐, 앞으로 잘해보자"... 이태원 특별법 통과에 눈물과 박수

[현장]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 통과... 김진표 "가결 선포"에 방청석 울음바다

등록 2024.05.02 19:16수정 2024.05.0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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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특별법 통과에 터진 '눈물' 2일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 앉아있던 이태원참사 유족들이 여야 합의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통과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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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특별법 통과에 터진 '눈물' 2일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 앉아있던 이태원참사 유족들이 여야 합의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통과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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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장 전광판에 비로소 '합의'의 숫자가 나타났다. 5분 만이었다. 여야가 함께 의논하고 유가족협의회가 수용한 '이태원 특별법'이 참사 발생 후 552일째 되는 날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재석 259명, 찬성 256명, 반대 0명, 기권 3명. 넉 달 전인 지난 1월 야권 주도로 처리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특별법(재석 177명, 찬성 177명)과 달리 이번엔 여야가 함께 뜻을 모은 결과였다.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 특별법)'이 처리되는 순간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두 눈을 꼭 감고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울음을 터뜨리거나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기도 했다. 이정민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표결 직후 가족들과 함께 조용히 박수를 치다가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악수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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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특별법)이 재석 259명에 찬성 256표, 기권 3표로 통과되자, 이정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이 유가족의 손을 잡아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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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특별법)이 재석 259명에 찬성 256표, 기권 3표로 통과되자, 유가족들이 서로 안아주고 있다. ⓒ 유성호

 
이날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참사 발생 원인과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출범도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유가족들은 "특별법상 특조위 권한이 축소되는 등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앞서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던 넉 달 전과 달리 이번만큼은 정부와 국회가 특조위 구성 및 설치에 협력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초록색불 가득 전광판... "고생했다", "아직 끝 아니다"
 

5분이면 될 일, 552일 걸렸다… 이태원특별법 통과에 눈물과 박수 ⓒ 유성호

 
이태원 참사 유가족 20여 명은 앞서 오후 2시 18분 국회 4층 본회의장으로 들어서며 다소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이태원 참사를 상징하는 보라색 점퍼를 입고 방청석 세 줄에 걸쳐 자리한 유가족들은 특별법이 본회의에 상정되자 나누던 대화를 멈추고 긴 침묵을 이어갔다. 회의장에 하나둘 입장하는 의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유가족들이 앉은 자리를 둘러싼 취재진들의 카메라 플래시 소리가 방청석의 빈 공기를 메웠다.

오후 2시 29분께 이태원 특별법이 상정되고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교흥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이 회의장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김 위원장은 "오늘이 참사 발생한 지 552일째 되는 날인데 이제야 여야 합의로 법안을 처리하게 돼 죄송하다"며 "유가족들의 양보가 있었기에 여야가 합의에 다다를 수 있었다. 진상이 명명백백히 규명돼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밝혀내고 안전 사회로 나아가기를 간절히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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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참사특별법 통과에 터진 '눈물' 2일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 앉아있던 이태원참사 유족들이 여야 합의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이 통과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남소연

 
얼마 뒤 본회의장 전광판에 '찬성'을 뜻하는 초록색 불이 가득 밝혀졌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유가족들은 김진표 국회의장에게서 '가결'이라는 단어가 들려 오자 울음을 참지 못했다. 특별법 통과 직후 방청석을 빠져나온 이정민 위원장과 이태원 참사 희생자 송은지씨 아버지 송후봉씨는 복도를 함께 걸으며 서로의 등을 두드렸다. 두 사람은 "그동안 고생했다", "아직 끝이 아니다", "앞으로 잘해보자"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넉 달 전에도 국회 방청석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지난 1월 9일 이태원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때 여야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법안 표결 전 본회의장을 퇴장했다. 같은 달 30일 윤석열 대통령은 야권 주도로 통과한 특별법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법안은 다시 국회로 돌아갔다. 참사의 진상을 규명해 달라는 유가족들의 오랜 기다림은 맺어지지 못했고, 여야의 협상은 이후에도 넉 달 가까이 공전을 거듭했다.

야권 압승의 총선,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이 이태원 특별법의 국회 통과에 물꼬를 텄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 투표에서 재석 259명 중 찬성 256명, 반대 0명, 기권 3명으로 이태원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다만 대통령실과 여당이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한 내용은 삭제됐다. 불송치 또는 수사 중지된 사건의 조사·재판 기록을 요구하고 직권 조사할 수 있도록 한 조항(28조), 특조위의 자료 제출 요구를 두 차례 이상 거부할 때 검찰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의뢰할 수 있도록 한 조항(30조)이 그것이다.

특조위 활동 기한은 원안대로 1년으로, 필요할 경우 3개월 내로 연장할 수 있게 됐다. 특조위원은 국회의장이 여야와 협의해 1명, 여야가 각각 4명씩 추천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여야는 전날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이러한 내용이 담긴 이태원 특별법 합의안을 발표했고, 이에 따라 이날 본회의에서도 찬성 당론으로 표결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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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특별법)이 재석 259명에 찬성 256표, 기권 3표로 통과되자, 유가족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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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태원특별법) 통과를 지켜본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표결 직후 본회의장 복도에서 만난 이정민 위원장은 "오늘 특별법이 하루 만에 처리될 수 있는데 그동안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렸다"라며 "1년 반 동안 유가족을 길거리에 방치하고 내버려 둔 여야 정치인들을 질타하고 싶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특별법 통과라는 결실을 맺었지만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목적은 아니다. 앞으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기다리며 특조위 조사를 지켜보고 아이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가족들은 표결이 끝나고 같은 층에 있는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에 모여 서로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나눴다. 이 위원장이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그동안 아프고 힘든 고행을 묵묵히 참고 견디면서"라며 눈시울을 붉히자 다른 유가족들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유가족들은 "고생하셨어요", "고맙습니다"라며 서로에게 힘껏 박수를 보냈다.

"정부여당, 특조위 무력화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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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과 야당 의원들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10.29 이태원 참사 특별법 여야 합의 통과를 반기며 정부는 진상조사를 위한 자료제출 등의 요구에 성실히 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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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유가족들은 이어지는 전세사기 특별법과 채 상병 특검법 처리 직후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년 반 만에 진상규명의 첫걸음을 뗐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선미·이해식·박주민·강민정·남인순(이상 더불어민주당)·장혜영(정의당) 등 야당 국회의원들도 함께했다. 이들은 여야 합의로 이태원 특별법이 통과된 것을 환영하면서도 "정부와 여당이 특조위를 방해하고 무력화하지 않길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고 이남훈씨 어머니 박영수씨와 고 이지현씨 어머니 정미라씨는 "오늘 합의에 아쉬운 점도 있지만 독립적인 진상조사기구를 구성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을 만들어 냈다는 의의가 있다"라며 "윤 대통령은 정부 이송 즉시 특별법을 공포하고 특조위 구성에 신속히 착수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 역시 빠른 시일 내 진상조사기구가 출범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 전후로 <오마이뉴스>와 만난 유가족들도 각자의 소회를 이야기했다. 송후봉씨는 "1년 반 동안 유가족이 처절하게 싸운 결과였다"며 "그동안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억울하게 희생된 아이들을 나 몰라라 하는 대통령을 보며 참담함을 많이 느꼈는데 오늘 특별법이 통과된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대통령이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우리 유가족들의 아픔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고 김의현씨 어머니 김호경씨도 "이렇게 금방 처리될 걸 1년 반 동안 우리 가족들을 왜 그렇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본회의 방청하면서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태원'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눈물이 나왔다. 앞으로 여당이 진상규명을 통해 아이들의 억울함을 푸는 과정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태원참사특별위원회 위원장인 남인순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오늘 특별법 처리에 불과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법안이 더 빨리 통과되지 못한 탓에 유가족들이 그동안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셨다"라며 "이제 특별법이 제정된 만큼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안전 사회로 가는 길에 함께하겠다"라고 말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유가족들이 추운 날씨에 추모제를 하고 한여름에 단식과 오체투지에 나서는 등 어려운 과정을 잘 버텨내며 애써주신 결과가 오늘의 특별법 처리라고 생각한다"라며 "최종적인 내용에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이라는 종착점에 도착하기 위해 국회에서 끝까지 감시하겠다"라고 밝혔다.

장혜영 정의당 원내대표 직무대행도 "기쁘지만 기뻐할 수만은 없는 날"이라며 "이제 특별법으로 추진될 특조위에서 왜 참사를 막지 못했는지, 참사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고 참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진실로 나아갈 것이다. 앞으로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거리에서 유가족의 곁을 지키겠다"라고 전했다.

이들은 "이태원 참사 진상을 규명하라", "진실을 향한 첫걸음 이제부터 시작이다", "시민들과 손잡고 생명안전사회 건설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유가족들은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분향소로 이동해 희생자 159명 영정 앞에서 추모를 진행하고, 오후 6시 34분 분향소에서 시민들과 추모문화제를 진행한다.
#이태원참사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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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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