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적고 앞문 다니고 반장 되면 좋다

'일일반장' 초등학교 2학년 김·순·돌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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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근혁(bulgom)등록 2013.05.16 12:26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근처 아담한 초등학교 일일반장 2학년 김·순·돌입니다. 어제는 친구와 싸웠습니다. 그 친구가 주먹으로 때린 것은 아니고요. 그냥 말로 얻어맞았습니다.

"선생님은 왜 친구 사이를 갈라놓는 걸까요?"
"너 ×× 그만하지 못해? 넌 선생님 앞잡이야!. 친구를 팔아먹는…."

어제 점심 때 들은 위와 같은 친구의 말을 저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억울합니다. 나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반장은 선생님과 같아요. 그러니 떠든 사람 이름을 칠판에 적으세요."

그래서 떠든 아이 이름을 세 번째 적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그 녀석이 저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나도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가 떠들었으니까 적는 거지. 선생님이 이름 적으라고 했잖아."

방금 전 6학년 친누나한테 친구랑 싸운 얘기를 했습니다. 누나는 "왕따 당하지 않길 다행으로 알라"고 말했습니다.

"누나가 5학년 때 반장하면서 제일 싫었던 게 친구 고자질해야 하는 것이었어. 다 떠들었지만, 만만한 애 한 명만 공책에 적었지. 근데 점심 때 아이들 5명이 나를 찾아 와서는 '배신자!'라고 소리치고 도망 가더라고. 너무 큰 충격이었어."

누나 말을 듣고 나니 억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왜 반장한테 이름을 적으라고 해서 친구 사이를 갈라놓는 것인가요? 물론 반장을 하면 나쁜 일만 있는 건 아닙니다. 기분 좋은 일도 있습니다. 제일 폼 나는 것은 교실 앞문으로 다닐 수 있다는 겁니다. 앞문은 '선생님 차지'이고 뒷문은 '우리들 차지'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앞문으로 다니지 못하잖아요? 근데 반장할 때는 앞문도 '반장 차지'가 되어 신이 납니다.

물론 어떨 때는 반장이 아닌 아이들도 앞문으로 다닐 수 있습니다. 급식 통 옮길 때, 선생님 심부름 할 때는 앞문으로 다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긴 합니다. 옆 반은 아이들이 앞문, 뒷문 다 다닐 수 있는데 우리 반은 왜 그 문이 '선생님 차지'인 것일까요? 쉬는 시간 화장실이 급할 때도, 운동장에 나갈 때도 앞문으로 나가면 빠른데 왜 우리 반 친구들은 뒷문으로 돌아서 가야만 하는 걸까요? 이에 대해 중3 형한테 물어봤습니다. 형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습니다.

"네가 초딩이니까 그렇지. 중·고딩들은 그런 것 없어. 우리는 수업시간에도 앞문 박 차고 들어오지 않는 걸 선생님이 다행이라고 말씀하실 정도야."

앞문은 '선생님 차지', '우리 차지'는 뒷문

그러더니 형이 초등학교 때 얘기를 들려줬어요. 글쎄 그 선생님은 뒷문에 못질을 했데요.

"약간 괴짜지만 인기 캡이던 5학년 때 선생님 있었는데. 그 선생님은 뒷문을 못으로 박았어. 그리고 우리들 얼굴 많이 보고 싶다고 앞문으로만 다니라고 했어. 그리고 뒷문을 게시판으로 쓰더라고. 그랬더니 안 좋은 게 뒷문을 갖고 장난을 치지 못하겠더라고."

형 얘기를 듣고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아무튼 올해는 학교 중앙현관으로 다닐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1학년 때만 해도 중앙현관은 '선생님들과 손님들 차지'이고 '우리 차지'는 뒷문과 옆문이었거든요. (관련기사 : "현관 놔두고 '쪽문'으로만 다녀야 하는 아이들")

그런데 지지난 해 어느 날 선생님의 말 한마디로 중앙현관에 해방이 찾아온 것이죠. 그때 말씀은 아직도 기억납니다.

"야. 이제 너희 학생들도 중앙현관으로 다녀도 되요. '중앙현관 통제하지 말라'고 교육청에서 공문이 왔거든요. 학생인권 인권하더니만 중앙현관도 열렸네요."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취재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 식으로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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