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24 09:00최종 업데이트 24.04.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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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미사일총국은 19일 오후 서해상에서 전략 순항미사일 '화살-1라-3'형 초대형 전투부(탄두) 위력 시험과 신형 반항공(反航空·지대공) 미사일 '별찌-1-2' 시험발사를 진행했다고 20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총선이 끝났다. 선거 결과로 묵은 체증이 뚫리듯 시원한 사람도 있고, 깊은 시름과 낙담에 빠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다. 정치는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당면한 현실과 과제를 실제로 풀어가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정치가 풀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한두 가지로 정리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복잡하다. 나는 남북 관계를 포함한 심각한 한반도 위기 극복의 문제를 앞에 두고 싶다. 이 땅의 현재와 미래의 안전이 우선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구상하고 꿈꾸는 모든 중요과제가 한순간에 무너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세계 곳곳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님을 알고 있다. 남북은 3년에 걸친 혹독한 전면전으로 한반도 전체가 잿더미가 되었고, 당시 인구의 1/10에 육박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평화와 공존은커녕 전쟁 종료(종전)와 기본적인 협력관계조차 무너져버린 최악의 상황임을 알고 있다.

평창올림픽 이후 진행된 한반도 평화 전환 시도가 무너진 후 북한은 육해공 모든 곳에서 단거리, 중거리,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며 위기를 키웠다. 남한 역시 군사동맹 수준까지 발전한 한미일 동맹을 더욱 굳히고, 핵 공격까지 가능한 한미 군사훈련을 더 강화하였다. 외국에서조차 한국전쟁 이후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경고할 정도다.

현재의 인식만큼 중요한 것은 지금의 위기 구조가 도대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근원을 바로 살피는 일이다. 개인은 물론 집단과 집단 사이의 갈등은 표면적인 현상 너머의 시작과 그 뿌리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길게 잡으면 한반도 위기의 뿌리는 해방 당시까지 거슬러 가야 하지만, 남과 북, 그리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현재 위기 상황의 구조는 1990년대 전후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미국과 소련을 필두로 한 동서 냉전 체제가 만들어지고 중국 사회주의 혁명(1949년), 한국전쟁(1950~53년),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의 인도차이나 전쟁(1955~75년)과 쿠바 위기(1962년) 등 오랜 대립 시대가 이어졌다.

양 체제의 중심인 미국과 소련이 국내외적 위기를 거치며 1980년대 들어 냉전 대결을 무한 확장하기 힘든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특히 미국 등 서방측과의 체제대결에 쏟아붓느라 국력을 소진한 소련에서 먼저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변화의 거센 바람 맞은 한반도

1985년 집권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은 미국 등 서방과의 체제대결 중단과 소련의 개혁 개방을 선언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미국 등 서방측이 불참하고, 1984년 LA 올림픽에 소련 등 공산권이 불참했으나, 1988년 서울올림픽에는 북한과 쿠바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공산권 국가가 참여한 것은 그런 놀라운 변화의 결과였다.

이러한 변화는 소련의 지원과 압박 아래 간신히 틀어막았던 공산권 국가들의 잇따른 체제 전환을 가져왔다. 1989년 폴란드, 헝가리, 불가리아, 체코, 유고 등에 이어 1990년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이 무너지면서 독일이 통일했다. 그리고 1991년에는 이 모든 변화를 이끌었던 고르바초프도 실각하면서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마저 붕괴하였다.

전 세계를 둘로 나눠 체제대결을 벌였던 동서 냉전이 이렇게 갑작스레 끝나버림에 따라 분단 체제를 굳게 이어왔던 한반도 역시 변화의 거센 바람을 맞지 않을 수 없었다. 의지했던 소련 등 사회주의 맹방들이 무너져 갑자기 독자생존의 벼랑 끝에 내몰린 북한은 물론, 달라진 국익 경쟁에서 홀로 서야 할 남한 역시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1990년대 초부터 남북은 본격적 접촉에 나서기 시작했다. 동서 냉전체제가 끝난 마당에 남과 북은 서로를 계속 적으로만 둘 수 없었고, 상대를 인정하고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는 협상에 나서게 되었다.

그 결과, 1991년 남북한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며 국제연합(UN)에 동시 가입으로 국제무대에 함께 등장했고, 남북 사이 교류와 협력, 화해 불가침 합의, 한반도 비핵화 선언까지 평화와 공존을 위한 기본 의제에 합의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러나 딱 거기서 멈췄다.

어차피 분단 체제는 전 세계 냉전체제가 한반도에 유입됨으로써 생긴 유산이었기에, 분단 해체도 남북만의 합의를 넘어 국제사회의 동의와 협력이 필요했다. 독일 통일이 그저 동서독만의 합의를 넘어 미국 등 서방과 소련 등 동구권이 함께 협력함으로써 성취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려면 40여 년 적대국이었던 옛 사회주의권은 대한민국과, 서방측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수교를 맺고 서로 적대를 멈춰야 했다. 실제로 한국은 소련(1990년), 중국(1992년)을 비롯해 동구권과 차례로 수교 관계를 맺었다. 그러나 동일하게 적대를 청산하고 새로운 협력관계를 맺어야 할 미국, 일본 등 서방은 지금껏 기초적인 외교관계조차 거부하며 북한을 국제적 고립 상태로 몰아넣었다.

왜 그랬을까? 서방측이 보기엔 사회주의 맹방들이 다 무너진 상태에서 복잡하게 수교하고 협력하지 않아도 북한이 머지않아 스스로 망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조짐이 보였다. 1994년 북한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던 김일성 주석(서열 1위)과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서열 2위) 등 혁명 1세대가 잇따라 죽었고,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은 심각한 식량난과 경제난, 그에 따른 처절한 고난의 행군 시대를 견뎌야 했다.

국제사회의 외교와 안보
 

지난 2일 제주 동남방의 한일 간 방공식별구역(ADIZ) 중첩구역일대에서 한미일 공중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훈련에는 미국의 B-52H 전략폭격기, 한국 공군의 F-15K 전투기, 미국 공군의 F-16 전투기, 일본 항공자위대의 F-2 전투기 등이 참가했다. ⓒ 국방부


그때 이후 미국 등 서방측은 '북한 붕괴시나리오'를 만들어 벌써 30년 넘도록 북한을 진지한 대화 상대로 여기지 않고, 무시, 고립, 압박하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은 그 무렵부터 독자생존 전략에 내몰렸고, 바로 핵과 미사일 등을 개발함으로써 서방과 남한의 붕괴 전략에 맞서려고 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붕괴를 바라며 고립과 무시 전략을 이끌고, 북한은 적절히 중국을 내세워 완충지대를 형성하며 핵실험과 미사일 성능과 실전 능력을 향상해 나가면서 벼랑 끝의 존재감을 거듭 확인시킨 게 지난 30여 년 한반도 안보 상황이다.

물론 벼랑 끝의 위기 바로 앞에서 간간이 극적인 반전을 이루기도 했다. 1994년 1차 핵 위기는 전쟁 일보 직전에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방북과 함께 제네바 합의를 만들었고, 주변 국가들이 동참하는 평화 협상 체제가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이후에도 핵과 평화를 뒤바꾸는 협상은 오랜 불신 속에서 위기와 다시 반전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2000년, 2007년)을 통해 서로의 땅을 오가며 다양한 상호교류와 협력사업이 진행되고 군사적 신뢰 조처가 무르익었다. 그러나 한국이나 미국 모두 정권만 바뀌면 이전에 있던 합의를 쉽게 부인하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남북과 북미 사이에는 더 깊은 불신과 적대감이 쌓여갔다.

상호합의와 협력이 깨진 후에는 그에 대한 보복처럼 북한의 더 강화된 군사적 모험 행동이 진행되었고, 한국과 미국은 유엔과 국제사회를 동원해 북한 고립과 망신 주기, 그리고 연합훈련을 강화하며 서로 응징이 반복되었다. 그럴수록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더 향상되었고, 이제는 한반도와 일본열도, 태평양은 물론 미국 본토까지 닿을 수 있는 전력에 다가섰다.

국제사회의 외교와 안보는 우리 자신의 국익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게 기본이다. 그러나 내 것을 다 얻기 위해 상대방의 입장과 요구를 전혀 무시하면 내가 원하는 것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더 위험해지는 경우가 많다. 외교와 안보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엄연한 현실 위에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길은 없을까? 다음번 연재에서는 2018년 평창올림픽을 통해 만들어졌던 한반도 평화 전환의 과정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남북과 동북아 위기의 구조, 그리고 핵과 전쟁의 현실적 가능성과 그 해법 등을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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