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06 07:04최종 업데이트 24.03.06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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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에 돌입한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강당에서 긴급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었다. ⓒ 권우성


의대 입학 정원 확대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이탈 사태가 길어지는 중이다. 그로 인해 애꿎은 환자들의 피해가 늘고 있다. 생명과 직결된 중증·응급환자 진료를 주로 담당하는 상급 종합병원일수록 전공의 인력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잡는 집단행동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크다. 

의사 파업은 취약한 환자에게 치명적 피해를 입힌다. 그렇다고 의사 파업을 항상 비윤리적인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의사 파업을 둘러싼 윤리적 논쟁 중에는 '정의로운 전쟁'의 기준을 적용해 그 정당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관련 논문)도 있다.


이 논의에 따르면, 첫 번째 기준은 파업 목적의 정당성이다. 의사 집단의 사익 추구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더 좋은 의료체계를 도모하기 위한 의도라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단, 파업 목적이 정당할지라도 환자에게 '과도'한 피해를 입혀서는 안된다. 두 번째는 '비례성' 기준으로, 예컨대 파업 기간에도 필수의료 업무를 유지함으로써 환자에게 끼칠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업이 '최후'의 수단이었는지의 여부도 또 다른 판단 기준이다. 즉, 파업보다 덜 파괴적인 대안들을 모두 시도했음에도 실패한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밖에 파업의 도덕적 정당성을 일반 시민에게 공식적으로 밝히고 충분히 설명했는지 여부도 정당화 기준에 포함될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전공의 파업이 이러한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아마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그 까닭에 대해선 이미 많은 언론 보도를 통해 충분히 제시된 만큼 이 글에서 굳이 다시 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국민 안전은 개의치 않는, 정부의 놀라운 대응 기조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 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하며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 이번 파업이 '정의로운 전쟁'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모든 책임을 의사 집단에 씌우는 것이 옳은가? 파업의 정당성에 대한 판단과 별개로, 이를 유발한 정부의 정책과 대응이 과연 바람직하고 적절한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난달 27일 대통령의 발언처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게 정부가 존재하는 첫 번째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사 파업에 맞서는 정부의 비타협적 강경 대응을 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자명한 공리가 공허한 정치적 수사로 들리기만 한다. 

정부의 비유대로 의사 파업을 대(對)국민 인질극이라고 치자. 인질의 무사 귀환을 정말 원한다면 적극 협상에 나서면서 때론 자신을 '희생'하기도 하는 게 정석 아닌가. 정부의 대응 기조는 인질의 안전을 개의치 않는, 즉 별로 '아쉬운 것 없는' 사람만이 보일 수 있는 태도와 닮아 있다.

의대 입학정원 확대 계획을 철회해야 한다거나 증원 규모를 감축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의료 대란으로 인해 시민들이 겪게 될 고통과 불편의 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관점, 태도, 입장의 문제를 짚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계산대로 강경책이 효과를 발휘해 조속한 시일 내 파업이 철회되면 다행이다. 하지만 만약 파업의 규모가 확장되고 장기화될 경우 (미래의 잠재적 환자를 포함한) 환자들이 겪게 될 피해는 상상 이상이 될 것이다. 또 사회구성원 모두가, 갑작스레 크게 아프거나 다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과 불안함 속에서 긴장된 일상을 견뎌야 하는 사회적 고통의 비용 역시 상승할 것이다.

정부는 이렇게 항변할 듯 싶다. 지금 당장은 이러한 고통이 뒤따르더라도 의사 증원 정책을 관철시키면 훗날 필수의료 공백 문제 해소에 기여함으로써 사회 전체적으로 더 큰 이득을 안겨줄 것이라고 말이다. 이 전망에 동의하지 않지만, 설사 맞다고 하더라도 의사 파업으로 소중한 생명과 건강을 잃게 될 '불운'한 희생자 개개인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정의로운 전쟁'의 비례성 기준을 떠올려 보자. 정부 역시 자신이 설정한 정책목표(의사 증원)가 아무리 정당할지라도, 이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최선의 정책 대안과 전략을 선택할 의무가 있다. 하나의 정상에 오르는 길에는 여러 갈래가 있기 마련이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환승센터 인근에서 개최한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전국의사 총궐기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의사 파업의 역사를 기록하고 연구한 문헌만 해도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2020년 의사 파업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이익집단으로서 의료전문직이 가진 이해관계, 신념, 동기, 권력 자원, 전략이 어떠한지, 그리고 직업적 윤리의식에 대한 호소와 같은 규범적 접근이 얼마나 무력한지 등도 명확히 드러났다. 이번에도 의사 집단은 정확히 예측 가능한 행동을 하고 있다. 그에 따라 환자 피해가 발생하리란 것도 다 예측 가능한 문제였다. 이를 몰랐을 리 없는 정부로서는 당연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접근법을 모색하면서 치밀한 대비책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런데 정부는 이런 기대와 다른 정책 행보를 전개했다.

세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의 증원안을 발표하며 전공의 집단 파업을 유발한 뒤 "불법 파업에 형사 처벌로 엄정 대응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며 집단적 반발과 저항을 부추긴 측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차례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열며 신중한 접근을 취하던 것과 무척 대조적이다.

그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선거에 유리한 이슈로 활용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환자를 볼모로 실력행사를 하는 배타적 특권 세력으로 의사들을 악마화하고 이를 힘으로 제압하는 '통쾌'한 장면을 연출함으로써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치 행태라는 것이다.

갑과 갑의 소란한 싸움... 소외된 시민들
 

정부가 의대정원 증원 필요성 및 의사 집단행동 관련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지난달 18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의 모습. ⓒ 연합뉴스

 
정부의 실제 의도가 어떻든 간에 이러한 정책의 '급발진'에 따른 피해가 정책결정 과정에서 간과되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필자는 이 점을 집요하게 문제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시민의 관점은 결여되어 있는 것, 바로 이것이 진짜 문제가 아닐까. 

의사 증원은 시민들의 삶에 '중요한(critical)' 영향을 미치는 정책결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시민들은 철저히 배제됐다. 전문가와 관료의 관점에서 사람들의 고통은 흔히 과소평가 되기 마련이다. 만약 다양한 시민들의 관점이 반영될 수 있었다면 지금과 다른 접근법이 도출되었을지 모른다.

의사 증원에 대한 찬성 여론이 70~80%으로 높다고 해서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 방식마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정부는 시민들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에 충실하게 사용할 책무가 있다. 개별 사람의 생명과 인권을 소중히 여기고, 사회적 분열과 적대를 줄이기 위해 애쓰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의 싸움 역시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럼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국가권력과 의사권력 간의 싸움을 보면서 우리는 누구의 건투를 빌어야 하는가. 냉소와 무력감을 넘어 냉철하게 사태를 직시하는 가운데 무엇보다 정부와 의사, 전문가 집단 모두 시민의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분노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때 시민의 관점이란 돈과 권력이 아닌, 사람의 생명과 건강,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사람 중심 관점(people-centered perspective)'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을 견지하지 않으면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쏟아지는 온갖 논의들의 홍수에 휩쓸려 문제의 본질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정부의 관점을 좇아, 또 다른 누군가는 의사 집단의 입장에 서서 사태를 진단하고 평론한다. 각 논의를 들여다보면 일정한 논리적 타당성이 있고 일말의 진실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해관계에 따른 편향된 주장과 교묘한 논리적 비틀기도 섞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의 관점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사람 중심 관점의 결여는 단순히 정책결정의 민주적 정당성 여부나 추진 방식의 온건성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정책을 의제화하는 과정, 즉 문제를 정의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최선의 대안을 개발하고 선택하는 모든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필수·지역의료 공백'이라는 개념으로 납작하게 추상화된 현실의 문제는 실제론 매우 입체적이며 복합적 요소들이 연결되고 중첩돼 있다. 의료와 관련해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 속에는 단지 의사나 병원의 부족만이 아니라 지나치게 영리를 추구하는 병의원에 대한 불신, 즉 신뢰할 수 있는 의료기관의 부족 문제도 포함돼 있다.    

또 보건의료 자원이 부족한 비수도권 지역 주민의 관점이라면 경제성이 어떠하든 일정한 거리 내에 신뢰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존재하기를, 또 경찰이나 소방관처럼 있어야 할 그 자리를 꿋꿋이 지켜줄 수 있는 의사 인력을 양성하고 배치하는 시스템을 바랄 것이다. 이는 다 시장주의적 원리로는 구현될 수 없는 모델이다. 따라서 정책문제의 정의 단계에서부터 보건의료체계의 시장화·영리화 문제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체계에 대한 문제화 과정은 건너뛴 채 곧장 대안으로 넘어가 정부는 '의사 수'를 말하고, 의사들은 '보상(수가)'을 외친다. 그리고 시민들은 이런 좁은 선택지 앞에서 '비자발적 동의'를 강요받고 있다. 강제적이지 않지만 자발적이지도 않은 그런 동의 말이다. 복잡다단한 현실의 고통을 '필수·지역의료 공백'이라는 프레임으로, 또 그에 대한 해결책을 의사증원이나 수가인상으로 환원시키는 이 단순함과 깔끔함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지난 에서 밝혔듯이, 이 문제는 결국 보건의료체계의 과도한 시장성에서 기인한 것이므로 이를 억제하는 방향으로, 전체 체계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지금은 서로 충돌하고 있지만 정부와 의사 집단 모두 보건의료 영역의 상품화, 영리화라고 하는 큰 틀의 방향성에 있어서는 한배를 타고 있는 사이인 만큼 시민들이 직접 공적 주체로 나서서 이를 통제하고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 강화를 견인해 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갑과 갑의 소란한 싸움 뒤에 묻혀있는 총체적 개혁의 필요성이 이번 계기로 공론화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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