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2.29 07:06최종 업데이트 24.02.2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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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2일(현지시간 )김건희 여사가 빌뉴스 리투아니아 대공 궁전 앞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동행한 각국 정상 배우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 영부인도서관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과는 달리 영부인(First Lady)의 역할은 헌법에 명시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는 대통령 배우자로서 내조하는 일을 하다가 점점 역할이 진화되어 왔다. 건국 초기만 해도 '부인(lady)'이라는 용어가 영국의 왕실 계층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되었다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백악관의 영부인이라는 단어가 정식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권력을 상징한다는 의미로 대통령과 가족들은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영부인들은 너무 일을 벌여서, 혹은 일을 충분히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았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의 부인 메리 링컨은 사치와 낭비가 심하다는 이유로 구설에 올랐다. 온 나라가 남북전쟁에 휘말렸을 때도 백악관 거주공관을 새로 단장하고 값비싼 의류를 구매하는데 연방 예산을 사용했다. 또, 2012년 6월 26일 ABC뉴스는 메리가 "군인들의 복지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자금을 해방된 노예들의 복지용으로 전용해 정치적 스캔들에 휘말린 최초의 영부인"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28대 대통령 토머스 우드로 윌슨의 부인 에디스 윌슨은 대통령의 업무에 깊이 관여하려 했다. 회의에 자주 참석하고 수행비서 역할을 자처했다. 백악관 방문자를 영부인이 선별하고 걸러냈으며 대통령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아예 부통령 행세를 했다고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보도한 바 있다. 

2019년 5월 17일 자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당시 에디스 윌슨은 침실에서 요양 중인 우드로 윌슨 대통령을 부통령을 비롯한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하게 했으며 백악관 역시 투병 중인 대통령이 살아있다는 것조차 영부인의 입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점성술사와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 
 

2021년 10월 18일 <뉴욕포스트> 기사 "로널드 레이건의 아내 낸시는 어떻게 점성술사가 대통령직을 장악하게 했나". 사진 왼쪽은 낸시 레이건의 점성술사였던 조안 퀴글리. ⓒ 뉴욕포스트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부인 낸시 레이건은 남편 일정에 점성술사를 깊이 관여시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점성술사와 먼저 상의하고 나서야 대통령 일정을 백악관이 관리하도록 허락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1988년 5월 4일 자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레이건 대통령과 영부인은 점성술의 징후를 보고 재선출마 발표 시기를 정했다. 레이건이 캘리포니아 주지사였을 때 취임식을 자정이 갓 넘은 밤 12시 10분에 거행한 것도 행성의 정렬에서 가장 좋은 시간이라는 점성술사의 의견을 따른 것이다. 

2016년 3월 6일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낸시 레이건의 전속 점성술사가 외교와 냉전시대의 정치는 물론 대통령의 암 수술 시기를 정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2021년 10월 18일 자 <뉴욕포스트>도 "로널드 레이건의 아내 낸시는 어떻게 점성술사가 대통령직을 장악하게 했나"라는 헤드라인으로 조롱 기사를 내기도 했다.
 

2017년 8월 6일 <가디언> 기사 "에마뉘엘 마크롱, 아내에게 영부인 역할 부여 계획 논란" ⓒ 가디언

 
미국에서 일찌감치 자리 잡은 영부인의 호칭과 역할이 프랑스에서는 뒤늦게 논란이 되었다. 2017년 8월 6일 영국의 <가디언>은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아내에게 영부인이라는 공식 지위를 부여하겠다는 대선공약을 지키려다 난항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직 영부인이라는 공식 호칭이 없는 프랑스에서는 대통령 배우자의 외부 활동이 해외순방 동행에 그치고 있었다. 하지만 마크롱은 대통령의 아내가 하는 역할을 분명히 하겠다며 공식적인 지위를 부여할 것이라고 대선 당시 약속한 바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프랑스 대통령 배우자에게 영부인이라는 공식 지위가 부여될 경우, 집무실을 비롯해 직원과 경호를 위해 매년 약 45만 유로(6억 5000만 원)의 예산이 책정되어야 한다. 

프랑스에서 영부인이라는 공식 지위 인정 반대 청원이 등장해 2주 만에 30만 명 넘게 서명하고 대통령 지지율이 급락하는 등 정치적 역풍을 맞자 마크롱은 영부인 공식 지위 부여를 보류하는 것으로 한발 물러섰다. 2017년 8월 8일 <폴리티코>는 마크롱 대통령의 부인 브리지트에게 공식적인 영부인 지위가 주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영부인으로는 불리게 될 것으로 보도했다. 엘리제궁 웹사이트에서는 '영부인'으로 표기했으나 공식적인 지위부여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없었다.

"대통령 집무실에 VIP가 2명인데..."
 

1998년 7월 31일 청와대 전.현직 대통령 부부 만찬에 참석한 손명순 이순자 이희호 김옥숙 여사가 만찬에 앞서 환담을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나라에서도 영부인이 구설에 오른 사례는 적지 않다. 전두환씨의 부인 이순자 여사는 비자금 문제로 인해 영부인 가운데 처음으로 2004년 검찰에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재임 당시 '그림자 내조'로 잘 알려진 노태우씨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본인 명의 계좌에서 노씨의 비자금으로 의심되는 12억 원이 발견되어 검찰이 국고로 환수하기도 했다.

권양숙 여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되어 정치 후원자인 박 회장으로부터 600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11시간가량 참고인 신분의 비공개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이명박씨의 부인 김윤옥 여사는 2007년 대선 당시 미국의 여성사업가로부터 명품 가방과 3만 달러를 받아 구설에 올랐으며 뉴욕의 교민신문 기자가 취재에 나서자 선거캠프 관계자들이 돈으로 무마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김 여사는 2010년 한식재단 명예회장을 지내면서 개인 요리책을 발간하는데 정부예산을 사용한 것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011년에는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10만 달러를 청와대가 받아 김여사에게 전달했다는 단서를 검찰이 파악했으며,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이명박씨에게 인사 청탁 명목으로 건넨 20억 원 중 일부가 김 여사에게 흘러 들어간 정황을 검찰이 포착하기도 했다.
 

2월 1일 <뉴욕타임스> 기사 "영부인과 디올 파우치: 한국을 사로잡은 정치적 위기" ⓒ 뉴욕타임스


최근 세계 언론이 주목한 영부인 스캔들의 주인공은 김건희 여사다. 영국의 <타임스>는 지난 1월 '디올 가방 스캔들'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하면서 이 문제로 총선을 앞둔 대통령이 대중의 지지를 잃는 위기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김건희 여사가 과거 허위 경력과 논문표절로 인해 공개 사과했던 사실과 도이치모터스 스캔들에도 연루된 의혹이 있다고 소개했다. 

영국의 <가디언>도 '디올 가방 스캔들'을 마치 K드라마의 이야기 같다고 꼬집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 사건은 드라마 대본이 아니라 한국의 보수정권을 혼란에 빠뜨리는 진짜 정치적 위기라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에서 권력을 남용하는 것은 결코 웃을 일이 아니라며 이전 박근혜 탄핵과 투옥 사건을 다시 상기시키기도 했다. 

미국의 NBC 역시 '디올 가방 스캔들'로 소개하며, 2000달러짜리 가방이지만 한국의 리더가 정치스캔들로 인해 훨씬 더 큰 값을 치르게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영부인이 사치품을 선물로 받아들이는 사건으로 인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흔들리고 있으며 곧 있을 총선에서 보수당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압박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방송은 가방 사건으로 인해 대통령의 부정 평가가 58%에서 63%로 급상승하였으며 영부인의 행동이 적절치 못했다는 1월 26일 자 갤럽코리아의 여론조사도 함께 실었다. 

<뉴욕타임스>는 경제둔화와 이태원 사망사건, 북한의 핵 위협 문제에 봉착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개인적인 스캔들까지 터졌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논란의 중심에 있는 김건희 여사가 남편의 그늘 속에 조용히 있던 지난 영부인들과는 다르다고 보았다. 대선 전 한 매체 기자와의 대화에서 남편을 가리켜 "나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로 부르기도 했으며 "내가 정권을 잡으면"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에 보복하겠다고 한 발언도 소개했다. 

2021년 자신의 잘못을 공개 사과하며 남편이 당선되면 아내의 역할에 머물겠다고 했던 것과는 달리, 지난해 <아트넷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K문화를 알리는 영업사원"이 되어 "문화외교"에서 대통령과 정부를 돕고 싶다고 언급한 사실도 공개했다. 이 신문은 김건희 여사가 지난 2년간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정부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강조하는 바람에 종종 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가 기사 말미에 소개한 "대통령 집무실에 VIP가 2명인데 그중 첫 번째가 김건희"라는 농담이 웃기기는커녕 오히려 뼈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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