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1.02 07:12최종 업데이트 23.11.02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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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공공버스. ⓒ 위키피디아 공용

 
독일에서 지내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동료는 "딱정벌레 차를 몰겠네요"라고 말했었다. 그로 인해 폭스바겐 비틀을 잠시 상상해 보긴 했으나, 독일에 머문 7년 내내 난 벤츠만 탔다. 자동차가 없었던 내 일상의 이동 수단은 버스였는데, 그 버스에 떡 하니 붙어있는 마크가 벤츠였다(그도 그럴것이 독일 버스의 대부분은 메르세데스 벤츠 차량이다).  

그렇게 나는 매일 벤츠를 타고 다녔다. 독일의 대중교통 요금은 우리나라보다 비쌌고, 나름 저렴하게 이용하기 위해 한 달권을 구매해서 이용했다. 한 달권 티켓 구간 범위 밖으로 나가려면 기차를 타야 했는데, 최소의 비용으로 생활해야만 했던 내게 기차 요금은 망설임 없이 탈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특별히 비싼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동권'이란 의미를 재정 상황, 지불 능력과 연관 지어 심각하고 꼼꼼히 따져야 했던 기간이었다고나 할까? 독일 사회에서 이동권이란 개념은 장애로 인한 이동의 제한 문제를 다루는 개념이라기보다, 지불 비용 능력의 문제로 더 많이 이야기되었다.

독일의 49유로 티켓이 위기?

독일은 휠체어를 타고 버스나 전철, 기차를 타는 것이 어렵지 않게 설계되어 있는 편이다. 휠체어를 탄 이용자가 정류장에 대기하고 있으면 평소 타기 쉽게 인도 쪽으로 기울어지던 버스는 아예 운전기사나 다른 승객이 내려서 문 앞에 놓인 휠체어 디딤판을 깔아주고 휠체어 승객이 버스에 오르면 원상 복귀시키고 출발한다.

귀국 후 독일에 머문 기간만큼의 시간이 흘렀고, 오랜만에 기회가 생겨서 다시 독일을 방문한 것이 지난해였다. 마침 '9유로(약 1만 2000원) 티켓'을 판매하던 시기이기도 해서, 냉큼 구매하며 '진작에 이런게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어! 이동권 제약 없이 맘껏 다녔을 텐데!'라며 신나게 움직였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콤팩트(Compact)라는 독일 사회운동단체에서 보낸 메일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FDP(자유민주당. 사회민주당, 녹색당과 현재 독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한 축이다)가 49유로(약 7만 2000원) 티켓을 없애버리려 한다는 것이다. 메일 내용인즉슨 이랬다.

<49유로 티켓이 위기에 처해있다. 이미 1월초부터 교통부장관(FDP 자유민주당 소속)이 이 티켓 제도 유지에 필요한 재정 지원을 거부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가 이 입장을 고집한다면, 49유로 티켓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49유로 티켓을 구하자! 서명하러가기!>

'서명하러가기'를 클릭해보니, '지불가능한 대중교통티켓'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후문제를 야기하는 자동차 대신 버스와 전철, 기차 이용으로 전환시키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 티켓에 대한 재정지원 중단이 아니며, 오히려 14세 미만은 무료 이용을 보장하고, 청소년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더 저렴한 (예를 들면 29유로) 티켓을 추가로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만 이 비용에 얽매이지 않고 사회적 공정성을 담지한 기후친화적 이동수단의 위상을 갖게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이를 위한 대중교통 인프라 투자의 필요성도 잊지 않았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아야 자동차에서 이 티켓 이용자로 갈아타는 사람이 늘어날 테니 말이다(편의상 대중교통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독일에서는 대중교통이란 용어가 아니라 공공교통이란 단어를 쓴다).

49유로 티켓은 지난해 6월부터 3개월간 지속된 9유로 티켓이 성공을 거둔 후, 독일에서 올 5월 1일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티켓이다. 9유로 티켓보다는 비싼 가격이지만, 이 티켓 하나면 독일의 모든 대중교통(고속철도를 제외한 버스, 트램, 지하철, 기차)을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대부분 지역의 대중교통 월 이용권에 비해 저렴함은 물론, 다소 복잡한 구간 요금제로 운영되는 독일 대중교통 요금제도에서 어떤 티켓을 구매할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수고도 덜어준다.

약 1100만 명이 구입해 사용하고 있으며, 연간 이용권으로 판매되지만 월 단위로 해지가 가능하다. 일단 2025년까지 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49유로 티켓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재정의 절반을 각각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내년도 교통부 예산이 올 예산보다 증액 편성되었음에도 교통부장관이 필요한 추가 지원 예산 편성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서명은 50만 명이 목표인데, 이미 45만 명 이상이 서명을 했다.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 도로는 누구의 것인가? 질문을 던지며 "모두를 위한 티켓" 운동을 각 지역에서 벌였던 곳이 독일 아닌가. 앞으로 더 진일보할지언정, 정책이 후퇴하지는 않겠거니 생각해본다.  

누구를, 무엇을 위한 '카드'와 '패스'인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9월 11일 오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후동행카드 도입시행 기자설명회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토교통부는 내년 하반기부터 대중교통비 환급지원사업 (일명 K-패스)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월 21회 이상 정기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지출 금액의 일정 비율을 다음 달에 돌려 준단다. 

경기도는 행정안전위원회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내년 7월 예정으로 더(The) 경기패스 사업을 시행하겠다고 설명했다. 경기도민이면 연령 제한 없이 어떤 교통수단이든 이용할 수 있는데, 교통비의 일부를 환급해주는 정책으로 정부의 K패스 사업과 연계해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서울시는 한국판 49유로티켓(금액이 비슷하다)을 제시했다. 월 6만 5천원 짜리 교통카드로 서울시내 지하철, 시내·마을버스,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사용할 수 있는 기후동행카드를 출시하겠다는 서울시의 발표는 반발을 샀다. 수도권이 통합환승제를 도입하면서 협의체를 구성해 요금 관련 내용을 협의해 온 것과는 대조적으로 같은 생활교통권에 속하는 경기도, 인천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수도권은 광역버스 등의 교통수단이 연계되어 있는데 서울지역이 아닌 지역에서 승차할 경우 카드 이용이 제한적이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서울시 자동차 등록 대수는 지난해 318만 대나 되고, 서울시 온실가스 배출량도 4700만 톤(2018년)이나 된다. 이 중 수송부문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양은 950만 6000톤으로 전체 에너지 부분의 19.2%를 차지하는데, 기후동행카드로 연 3만2000톤을 감축한다고 홍보하는 것을 보면, 수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생색내기가 아닐까 싶다.

연간 3백만 대가 넘는 자동차 중 1만3000대 가량의 승용차 이용 감소 효과라는 것도 홍보할 것은 못된다. 게다가 서울시는 대중교통요금을 인상해 버렸다. 자동차 유류세는 수년 째 인하된 채 있는데, 대중교통 요금을 올리다니. 거꾸로 가도 한참 거꾸로인 정책을 펴고는 느닷없이 면피하듯 기후동행카드를 내미니 비판할 수밖에 없다.

무상교통이나 저렴한 대중교통 요금제도는 이미 대세
 

지난 8월 13일 서울 시내 한 버스에서 시민이 카드로 요금을 결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에스토니아 도시 탈린은 무상대중교통을 실시한 지 10년이 되었고, 룩셈부르크 또한 전국 차원에서 무상대중교통을 시행하고 있다. 세종시에서는 2025년부터 무상교통 정책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의당의 대중교통 3만 원 패스 도입 요구, 1만 원 교통패스 연대 활동에 이어 얼마전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도 '모두의 티켓'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시민들을 대중교통으로 유입시키기 위한 여러 제안들이 들썩이는 것은 긍정적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자동차를 줄이고, 자동차에게 내주었던, 어쩌면 자동차가 점령했던 우리 모두의 공간을 공공적으로 재편하는 상상력이다.

자동차 중심 도로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대중교통을 위한 투자를 과감히 끌어내는 것, 대중교통 요금 제도를 운임 요금으로 회수하고 환원시키는 접근법이 아니라 대중교통으로의 전환이 가져올 사회적 효과와 그것이 제공할 비용을 재산정하며 정책을 펼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동차 중심으로 설계된 도시 공간을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재설계하는 과정의 하나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녹색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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