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22 07:02최종 업데이트 24.04.22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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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카이로 대학 학력위조 문제를 특종보도한 <문예춘추> 5월호와 <주간문춘> ⓒ 문예춘추/주간문춘


"고이케 도지사는 한때 중앙 정계 복귀가 유력하다는 의견, 그리고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될 경우 일본정치가 커다란 위험에 빠질 것을 우려했으며, 저는 일본의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다는 일념으로 이 수기를 썼다." - 고지마 도시로 변호사, 전 도민퍼스트 사무총장

그야말로 역대급 내부고발이다. 한때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의 최측근으로 불렸던 고지마 도시로 변호사가 <문예춘추> 5월호에 자신도 깊숙히 관여한 고이케 도지사의 카이로대학 졸업과 관련한 학력 위조 문제를 밝히는 수기를 게재한 것이다.


내용이 매우 세세하고 적나라해 4년 동안 설왕설래했던 고이케 도지사의 학력 위조 문제에 마침표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 고지마 변호사는 "어차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형사고발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애매했던 의혹들이 모두 밝혀질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논란의 중심에 선 도쿄도지사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 연합뉴스


고이케 도지사의 학력 위조 문제가 세간에 본격적으로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2020년 5월 29일부터다. 도지사 선거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출간된 이시이 다에코의 책 <여제 고이케 유리코>(이하 '여제')가 50만 부 이상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책 안에 등장하는 카이로대학 미졸업 여부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녀(고이케 유리코)와 카이로대학을 같이 다니며 4년 동안 동거했던 기타하라 모모요씨는 '고이케는 졸업을 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다'고 매우 구체적으로 증언했다.(중략) 게다가 고이케 본인이 직접 쓴 자서전 <피라미드를 오른다>를 보면 1년 동안 대학을 유급했다고 하면서도 동 대학을 4년 만에 수석 졸업했다고 써 놨다. 의문스러운 게 너무 많다."

<여제>의 돌풍과 함께 거대 미디어도 학력 위조 의혹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고이케 도지사의 정당이었던 도민퍼스트마저 그녀를 믿고 6월 5일 '도지사 대학 졸업증명서 공개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내기에 이르렀다.

앞서 언급한 고지마 변호사의 수기는 바로 다음 날인 6일부터 10일까지의 전모를 담고 있다. 수기에 따르면, 6일 저녁 고지마는 "지금 곤란한 상황에 빠져 있는데 만나서 상의하고 싶다"는 고이케의 연락을 받았다. 바로 만났을 때 그는 고이케가 그렇게 초조한 얼굴을 한 건 처음 봤다고 썼다.

"뭔가에 쫓기듯 초조하고 긴장한 그녀를 보자마자 대체 무슨 일 때문일까 생각했다. 코로나 문제라면 나에게 올 일이 아니니까. 그녀는 대뜸 '카이로 대학 건으로 지금 곤란한 상황인데 사실 지금 카이로 대학 학장이 나에게 보낸 편지가 있다. 이 편지 안에 내가 카이로 대학을 졸업했다는 문장이 들어가 있는데 이걸 공개하면 의혹이 사라질 것 같나요?'라고 묻는 것이다.

편지를 읽는데 무슨 행사 초대장이었다. 그녀가 말한 내용도 들어가 있긴 했다. '1972년 10월에 입학해 76년 졸업한 고이케 유리코씨를 12월 21일에 열릴 예정인 사이언스 데이에 초대하고 싶다'는 부분이었는데 읽는 순간 위화감이 들었다. 초대장에 이런 구체적인 문장을 넣는다는 게 이상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졸업은 하신 거 맞냐고. 그녀는 졸업했다고 즉답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대학이 발행한 졸업증명서를 공개하면 모든 의혹은 사라진다. 증명서는 있는지 되물었다. 고이케씨는 '있어요. 하지만 그걸로는 해결되지 않으니까 곤란한 거라구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 뭔가 있구나 싶었다."


당시 고이케의 변명은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당장 6월 10일에 출정식을 하고 투표일은 7월 5일이다. 코로나도 겹쳐 정식절차를 밟아 졸업증명서를 발급받는 와중에 선거 내내 이걸로 떠들어대면 재선이 물거품 된다는 게 고이케의 걱정이었다. 그때 고지마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나름의 안을 제시했다.

결국 출정식을 하루 앞둔 6월 9일 주일 이집트대사관 페이스북에 영어와 일어로 고이케가 카이로대학을 졸업한 것이 맞다는 글이 올라왔다. 이후 언론의 의혹 제기는 완벽히 사라졌고, 도의회도 '졸업증명서 제시에 관한 결의안'을 내지 않았다. 그리고 7월 5일 고이케는 압도적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청천벽력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2020년 6월 18일 일본 도쿄의 도쿄도지사 선거 공보판에 도지사 후보들의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다. 7월 5일 치러진 선거에서 현직 지사였던 고이케 유리코(사진 위 오른쪽) 후보가 재선에 성공했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4년이 지난 지금 왜 고지마는 내부고발을 결심한 것일까. 그는 수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사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 4년 동안 나는 회의감과 죄책감에 빠져 있었다. 코로나 시기 동안 국정 지도자들보다 도쿄도가 더 잘한다, 고이케 최고다 이런 말들을 보고 들었지만 정작 카이로대학의 제대로 된 졸업증명서는 여전히 공개되고 있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23년 말 그녀의 또 다른 측근인 모 인사 A씨와 함께 신주쿠교엔 주변 재개발 건으로 정보교환을 하던 도중 내 고민을 털어 놓았다. 그때 그가 나에게 말했다. '고지마씨, 당신은 고이케 도지사와 끝까지 싸울 생각이 있습니까'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A씨 입에서 '그 페이스북 성명문, 사실은 내가 쓴 겁니다'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고지마는 A씨의 말을 듣고나서야 비로소 모든 퍼즐이 연결되는 기분을 맛봤다고 한다.

먼저 시간이다. 6월 6일 저녁 관련 의혹 상담을 처음 받았는데 6월 9일 이집트대사관 페이스북에 정부가 공인하는 포스팅이 올라온다는 것 자체가 도저히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은데, 문장을 만들어서 대사관 측에 게재해달라는 로비를 고이케가 직접 했다면 시간 부족은 해결된다.

두 번째로 고지마는 고이케가 자신뿐만 아니라 최측근이라 불리는 몇 명에게 동시에 상담을 하면서 역할 분담을 했다는 것이다. 고지마는 자신한테만 의견을 물어보고 선거대책본부에서 공식적으로 해결한 것이라고 줄곧 생각해 왔었기에 어떻게 이 건을 이렇게나 신속하게 해결했는지 내내 궁금했었는데 이것도 해소된 셈이다. A씨는 고지마에게 보다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내가 먼저 일본어로 된 성명문(페이스북 게재문)을 쓰고 그것을 영어로 번역해서 올렸다. 그런데 보통이라면 아랍어를 먼저 올리고 영역, 일역본을 올릴 건데 이 성명문에는 아랍어 문장이 없다. 아마 아랍어까지 올리기엔 시간이 부족했거나 아니면 일부러 올리지 않았을 수도 있다. 게다가 내가 준 원안에서 사라진 문장들도 있는데 그 문장들이 왜 사라졌는지 살펴보면 꽤 재미있을 것이다."

A씨에게 원안 파일을 건네받은 고지마는 페이스북 성명문과 대조 작업을 벌였다. 그리고 A씨가 말한 흥미로운 부분들을 금세 발견했다.

"원안에는 '카이로 대학 졸업명부에 고이케 유리코라는 이름이 기재되어 있고, 졸업 판정은 대학이 공정하게 심사하고 절차에 따라 행해진 후 발급되는 것'이라고 카이로 대학 입장에서 본다면 극히 당연한 문장들이 들어가 있는데 이런 부분이 '졸업증서는 카이로대학의 정식절차에 따라 발급된다'로 변경돼 발표됐다."

"그렇다면 졸업명부에 이름이 있는지 아닌지 모르게 되며 공정하게 심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출정식 전날 고이케 도지사가 나에게 '고지마상, 이제 걱정할 거 없어요. 다 해결했으니까'라며 환하게 웃었다. 마치 이렇게 시나리오를 짠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의 학력 위조 의혹은 다음날부터 사라졌다."


불과 몇 개월 남은 도쿄도지사 선거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의 카이로 대학 학력위조 문제를 보도한 <문예춘추> ⓒ 문예춘추


하지만 카이로 대학의 정식절차를 밟았으니 된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이에 대해 일본 매체 <JB프레스>는 흥미로운 의견을 제시한다.

"이집트 현지 취재를 해 본 결과 카이로대학과 아인샴스대학은 국립대학임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사다트 정권, 그리고 이후 등장한 무바라크 정권에 이르기까지 약 40년간에 걸쳐 이른바 '대체 증명서(complementary certificate)'라는 졸업증서를 남발해 왔다.

좋게 말하면 '프레젠트(선물) 졸업증명서'이고 상식적으로 보자면 '부정 졸업증명서'이다. 정권이 이 사람을 졸업생으로 만들라고 말하면 졸업증명서를 발급한다. 실제로 이집트 국내외 유력정치인, 권력자, 기부자들에게 이 졸업증명서를 남발해 왔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이 매체는 "고이케는 이러한 부정 졸업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 강력한 커넥션을 가지고 있었다"며 "그녀의 아버지 고이케 유지로씨가 당시 이집트 부수상 겸 문화정보대신이었던 압둘 카델 하템씨와 매우 절친한 관계였기 때문이다"라고 보도했다.

이는 그녀의 카이로 동거인이었던 기타하라 모모요씨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기타하라씨는 "고이케가 직접 나한테 '간사이가쿠인대학 몇 개월이랑 카이로 아메리칸 대학 몇 개월 다닌 걸 1년으로 쳐 주더라구. 그렇게 2학년으로 편입했을 때 수업료랑 입학금도 전부 무료로 해 주더라구!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네'라며 매우 기뻐했었다"라고 <여제>에 말했었다.

이러한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고이케가 카이로대학을 다닌 것은 맞지만 입학과 재학, 무엇보다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졸업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도쿄도지사 선거를 불과 몇 개월 앞두고 있고 고이케 유리코는 3선을 노리고 있다. 과연 명명백백히 드러나고 있는 역대급 학력 위조 스캔들을 극복하고 3선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일본정치는 물론 시민들의 유권자 의식이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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